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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협조적인 학교의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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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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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학생이 발전을 하다 보면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 있다.  이 중에는 각자 알아서 참가 해도 되는 대회/행사도 있지만, “학교에서는 무관심인 수학 경시대회에 진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학교에서는 가르치지도 않는 AP시험에 응시”하는 것까지 학교측의 협조를 얻어야 실현이 가능한 일이 많다.

미국의 고등학교는 예체능분야는 학교측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줄 뿐 아니라 좋은 결과가 나올 경우에는 전교생의 귀감이 되도록 학교 행사로 시상식까지 한다.  하지만 학구적인 경시/행사의 경우에는 학교에 따라 협조/지원/허락에 극과 극의 차이가 난다.   내 학생을 통해 본 경험으로는 협조 확률이 50%를 넘지 않는다.  따라서 학교측의 협조가 필요한 시험/행사에 대한 참가/개최 계획은 “학구적인 활동이니 학교가 반기겠지”라고 가정하면 위험하고 반드시 학교의 협조를 확인 한 후 진행을 시작해야 한다.

학교측이 비협조적/적대적인 반응을 하는 경우에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은 “차별이 아닌가?” 하는 피해 의식이고 그 다음은 “포기해야 하나?  아니면 싸워야 하나?” 하는 투쟁/도주 (fight or flight) 반응이다.  그리고 좀더 큰 그림을 보는 사람은 “이 기회에 본 때를 보이는” 후배를 위한 파급 효과까지 계산에 넣을 수도 있겠다.  한데 이렇게 “발끈”하기 전에 학교측의 입장을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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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부에서 실행하는 미국의 학교/교사의 평가는 재학생 몇 명이 경시대회에 우승하고, 몇 명이 무슨 대학으로 진학 했는가로 정해지지 않고 몇 명이 낙제를 면했는가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지붕이 아니라 마루의 높이로 평가를 받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름도 No Child Left Behind (한 명도 뒤처지지 말기)이지 Many students reaching higher (여러명이 앞서 나가기)가 아니다.  내가 만나본 학교 선생님도 가르친 AP 반에서 몇 명이 만 점을 받았는가는 교사 평가, 연봉에 전혀 관계가 없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런 제도 하에서 가장 현명한 운영 방법은 혼자 알아서 A를 받을 학생은 방치 하고 고전하고 있는 학생을 위해 예산/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부상자는 넘치고 의료진의 인력이 제한되었을 때 실행하는1.어차피 죽을 사람,  2.그냥 둬도 살 사람, 3.치료하면 살릴 수 있는 사람 세 그룹으로 환자를 나누는 triage를 연상시킬 정도로 대부분의 학교는 모자라는 예산으로 (특정 학생이 아닌) 최다수의 학생을 위한 교육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 미국의 전형적인 공립 고등학교는 mission statement를 봐도 “대입”이라는 단어는 언급조차 없고 준법/봉사 정신이 투철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목표로 되어 있다.  반드시 대다수가 실패해야 하는 명문대 입학 목표로 하는 교육과는 달리 전체가 다 성공할 수 있는 “훌륭한 시민 되기” 가 목표라는 것이 미국의 교육이 한국의 교육보다 평화롭고 우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AMC 같은 경시대회를 유치하는 것은 아무리 성공해도 공립학교측에는 이득이 되는 점은 하나도 없고 (낙제생 수를 줄이지 않는다) 일단 AMC같은 행사가 공식화가 되면 학부모님의 수학 교육의 기대치가 동반상승 할 수 있다.  그리고 경시대회 성적이 저조하면 학교 수학에서 A를 받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도 알려지게 되니 한마디로 백해 무익, 긁어 부스럼이다.  그리고 설사 잘 가르칠 수 있는 선생님이 마침 있어서 대회 상을 휩쓸어 와도 그 선생님은 일만 늘었지 연봉이 올라가지 않으니 얼마나 지속할지가 미지수이다.  중도하차 하면 물론 원망을 사게 된다.  내가 교사였더라도 수학 경시대회 같은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들어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면 주로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벌이자는 일에 학교 측이 응해 주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고마운 일이지 거절하는 것이 황당한 일이 아니다.    특히 학부모가 모든 자원봉사 활동에는 쏙 빠지고 학교 공연에서는 자기아이 순서가 지나면 바로 귀가하는 지독한 얌체로 명성 높은 그룹의 일원이면 학교측이 얌체 같은 제안을 거절 해도 별로 놀라울 것이 없는 것이다.  얌체에게 어떤 호의도 베풀고 싶지 않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정의의 실현이다.  내가 무시해 오던 사람이 내게 호의를 베풀지 않으면 분개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이켜 보고 반성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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