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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학년 과목 선택이 대학을 정한다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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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등학교 진학할 학생이 9학년에 배울 과목을 선택하는 시즌이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여 무리 없고, 좋은 추억이 남는 고등학교 시절을 지내도록 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한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이 신입생의 과목 선택이 고등학교 4년간 수강할 과목을 정한다는 것이고 그 과목은 어느 수준의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즉, 지금 코스 선택이 합격 가능한 대학의 리스트를 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는 4년이고 4년 내에 여러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고등학교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 하나는 학교측이 자진하여 학생의 반을 바꾸어 주는 것이다. 처음 시작한 수준에서 아무리 잘 해도 그 반에서 A를 받는 것으로 끝나지 그 다음 수준으로 올려 주지 않는다. 미국의 고등학교에는 다양한 수준이 있기 때문에 각 수준마다 잘 하는 학생이 있고 그래서 All A받는 학생이 그리도 많은 것이다. 그 중에서 경쟁 심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물론 최고 수준의 반에서만 나온다. (그래서 고등학교 내내 All A를 받고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 못하는 학생이 그리도 많은 것이다.) 이 한번 정하면 바꾸기 어려운 미국의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Google에서 “수학 트랙”을 검색 하시면 상세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영어에 서투른 학생은 “수학은 잠시 보류하고 일단 영어를 익히자”라는 계산 하에 수학을 낮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낮게 시작하면 낮게 끝나게 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중간에 무슨 변화가 있으리라고 오산을 한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영어도 미국 학생보다 부족하고 수학도 평범한 학생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게 되고 결국 그에 상응하는 대학 합격 결과가 나와 실망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대입 뿐 아니라 인생에도 우리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우리의 강점의 힘이다. 그래서 절대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강점을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수학을 아주 잘하면 영어가 모자라도 수학경시대회 성적을 올려야 하는 다급한 학교에 특별 전형으로 합격할 수 있지만 약점이 덜 약하다는 것 만으로는 어떤 경쟁에서도 선택을 받을 수가 없다. (실지로 한국 유학생으로 수학 팀을 채워 랭킹을 올린 보딩스쿨이 있다. 그 학교 수학 랭킹보고 진학해봐야 수학 랭킹이 일반 학생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불만족스러운 결과를 끝나는 경우는 “시작은 여유 있게 결과는 최고 수준으로”의 자세로 고등학교 과정을 임하는 가족이다. 우선 여유를 즐기는 것부터 배운 학생이 사춘기로 들어가며 갑자기 더 학업에 가속도를 더한다는 설정 자체가 무리이고 학교측이 학생의 편리를 위해 해마다 반 배정을 바꾸어 주리라는 가정도 오산이다. 물론 꾸준히 걸어간 거북이가 낮잠 잔 토끼를 앞선 것을 상기하고 분발할 수도 있지만 요즘 토끼는 우선 앞서서 출발한데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속력으로 달린다. 오히려 거북이들이 가망 없음을 깨닫고 현명하게 쉬엄쉬엄 가서 뒤 늦게 다급해진 학부모님만 화병 나게 만드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니 무슨 이유에서이건 자제분이 최고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목표인 학부모님은 지금부터 목표를 인정 하시고 자제분이 같은 목표를 가지도록 설득하여 동의를 얻으시고 자제분이 자진하여 9학년 시작할 때부터 꿈 실현 가능성이 있는 반에 들어가도록 최선을 다 하도록 유도 하셔야 한다. (자제분의 동의를 얻지 못하시는 학부모님은 마음 비울 준비를 하셔야 한다.) 나중에 바꾸는 것은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학교측과 적대적인 관계까지 발전될 수 있다. “학생 혼자 묵묵히 하다 보면 학교/교사가 재능을 알아 보고 올려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낙제생 수의 감소”에 집중해야 하는 교육의 현실과 동 떨어진 희망이라는 현실도 파악 하셔야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은 “진리”의 정의가 “친구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시기이다. 반 배정은 친구 배정이다. 자제분이 열심히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9학년을 시작하면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진리”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가치관이 진리가 된다.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을 실천하는 마지막 기회가 9학년 반 배정이다.
왜 대입에서 과학 연구를 높이 사는가?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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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이 글은 2015년 시카고 중앙일보에 기고했던 글이다.
며칠 전 원하던 대학에 조기 합격한 학생의 축하 식사에 다녀 왔다. 이 학생은 동부의 명문 보딩스쿨에 졸업반인데 드림스쿨에 조기 합격한 이유가 과학연구를 한 덕분이라고 했다. 위에 설명한 이유로 나는 “합격 이유 자가진단”을 한 귀로 흘러 들었다. 한데 저녁 식사를 하면서 동급생 중 그 학생과 같거나 더 나은 스펙을 가진 학생들이 다 줄줄이 불합격 하거나 보류가 되었는데 오직 이 학생만 단번에 조기합격을 했다는 배경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 학생이 다른 점 중에 하나가 과학 연구를 했다는 점이었다. 그 외 연주하는 악기도 달랐고 (바이올린/피아노/첼로가 아니었다) 활동도 (테니스/전도활동이 아니었다) 달랐는데 그래도 이 학생의 차별된 스펙은 과학 연구였다고 생각이 모이는 이유가 있었다. 합격한 대학에서 이 학생의 연구를 따로 언급하며 대학 내에 유사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과 연결을 시켜 주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이제는 “보류” 통지를 받은 급우 사이에서도 과학 연구의 중요성이 인식된 것을 “너 과학 연구 멘토를 어디서 찾았니?”라는 질문이 우리 식사 도중에도 텍스트로 날라 오는 것을 보며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가정이 다 사실이라 가정하면 의문이 생긴다. 과학연구를 한 활동이 왜 그리도 중요한가? 이를 이해하는 데는 대학이 정말 필요한 학생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이 실지로 원하는 것은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앞으로 큰 일을 하여, 큰 손이 되어, 엄청난 금액을 기부할 될성부른 싹을 찾는 것이다.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는 정치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거에 이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거에 이겨야 공약하는 일을 할 수 있듯이 거금을 기부하는 졸업생이 있어야 공부 잘 하는 학생을 장학금을 주고 데려올 수 있고, 유능한 교수를 초빙할 수 있고, 중요한 연구를 지원할 수 있고, 한마디로 대학을 일류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내 생각에 현재 동양인이 입학에 차별 받는 이유 중에 하나가 기부자/수혜자 비율에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동양인 졸업시켜 그들이 장래에 기부할 금액의 기대치에 의한 계산이다. 물론 그 계산은 예년의 기록을 사용하여 추측했을 것이다. 동양인 불 합격생은 “내가 SAT가 만점인데”라고 억울해 하지만 그런 수혜에 만 몰입하는 학생으로만 캠퍼스를 채우면 대학 문닫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한데 공부도 잘 하고, 앞으로 큰 사업으로 큰 기부자가 될 학생을 어떻게 찾아 내는가? 그런 “징조”는 여러 각도에서 찾을 수 있다. 1. 시키지 않은 일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찾아 한다. 2. 학교에서 배운 것에 국한하지 않고 필요한 지식을 혼자 배워내는 의지와 능력을 동시에 보인다. 3. 아무도 해결이 한 적이 없는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덤비는 도전정신을 보인다. 4.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력을 보인다. 5. 속히 변하는 테크놀로지를 한발 앞서 생산적인 방향으로 응용하는 기지를 보인다. 대입 사정관이 볼 때 지원자가 위의 다섯 가지 바람직한 “자세/성향”을 갖추고 있는지를 가장 간단하게 확인하는 방법이 “과학연구를 수준급으로 했는가?”이다. 즉,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았으면 과학 연구를 완성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연구 경력을 높이 사는 것이다. 그리고 대회에서 입상을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위의 조기입학생은 아직 Intel STS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제는 “말 잘 듣고, 착하고, 시험 잘 보는 동양인 학생”으로 포장하는 학생이 대학정원의 여러 배가 될 정도로 범람한다. 이는 “평생 종업원으로 만족하며 살아갈 기질”을 보이는 것이지 “거물이 될 징조”가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 명문대를 지망하는 학생은 “훌륭한 수혜자”의 자격을 골고루 갖출 것이 아니라 앞으로 “큰 후원자가 될 기량”을 보이는 것이 대입에도, 본인에게도 훨씬 더 유리하다. 기부를 떠나서, 앞으로 격변하는 사회/경제에 잘 적응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도 현대의 학생은 위의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 조건을 발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과학연구를 해 내는 것이다.
비싼 무료 Part 2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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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는 수요가 공급을 능가하는 상황에서 가격을 무료로 정해봐야 단지 의도치 않은 사람이 수혜자가 되고, 돈이 들어가는 주머니만 바꿀 뿐 소비자는 결국 언제 어디선가 제 값을 치르고 만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공급이 무한대인 디지털 경제는? 이 경우에는 정말 가격이 무료가 된다. MIT의 공학 강의뿐 아니라 Harvard의 철학 강의도 다 edX를 통해 무료로 제공되고 있고 Wikipedia에서 무료로 백과사전을 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컴퓨터가 작동하기 위해 가장 기본인 Operating System Linux에서 시작하여 Word Processor/Spreadsheet 까지 다양한 수준의 무료 제품이 나와 이제는 무료 software 만으로도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렇게 좋은 서비스를 무료로 누리고 있는데 대체 무엇이 비싸단 말인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무료는 왜곡을 가져온다. 예를 들어 가난한 지역에 밀/자전거/신발을 대량 기부하면 그 지역의 밀/자전거/신발 사업을 운영하던 사람은 파산하게 되고 당분간 그 사업은 시작조차 할 수가 없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문가가 무료로 재능을 기부하면 유사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는 장래에 그 분야로 진출하고 싶었던 사람은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디지털 경제는 무한 복제가 되기 때문에 밀/자전거/신발 경제와 달리 한 사람이 한 번 기부하면 전 세계가 두고두고 재사용을 하게 되어 그 여파가 더 크다.
예를 들어, 워드 프로세서를 살펴보자. 현재 유료 워드 프로세서는 Microsoft Word뿐이다. 그 외의 다양한 우수한 워드 프로세서는 모두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지만, 앞으로 경제 활동에 참여하여 무언가를 생산해야 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보면, 이제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어 돈을 버는 길은 사실상 막혔다. 만약 워드 프로세서 개발에만 집중하고 싶다면, 자원봉사자 팀의 일원이 되어 무료 버전을 더욱 발전시키는 일에 기여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
물론 세상에는 워드 프로세서 외에도 수많은 종류의 소프트웨어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이미 무료 버전이 제공되고 있다. 독자 여러분은 스마트폰의 유료 앱을 몇 개나 구매하셨는가? 아마도 대부분 나처럼 무료 버전만 사용하고 계실 것이다. 이제는 무엇이든 단순히 유료로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으며, 무료 버전을 뛰어넘는 가치를 제공해야만 유료 모델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돈에 집착하지 말고 무료 봉사로 인류에 공헌하는 길도 있다. 하지만 무료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Wikipedia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Wikipedia에 글을 써 지식을 나누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 뒤에는 반드시 봉사자의 생계를 넉넉히 해결하게 해 주는 후원자가 있다. 반드시 Wikipedia를 직접 후원해서가 아니라, 저자를 (다른 일로) 고용하여 생활이 각박하지 않을 정도로 월급을 주는 고용주가 있어야 Wikipedia에 글을 써서 올리는 잉여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회사가 생산품을Wikipedia나 edX 식으로 무료로 세상에 뿌렸으면 전세계의 경쟁 생산자들이 아우성을 했을 것이고 법정에서도 틀림없이 덤핑이라 판결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식/재능의 덤핑은 오히려 칭찬을 듣는다. 칭찬을 받건 지탄을 받건 그 여파는 덤핑과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이미 2류 대학의 교수는 강의시간에 Harvard교수의 강의 녹화를 틀어주려고 하는 대학 운영진과 충돌을 하고 있다. 기존 세대는 은퇴할 때까지 위치를 필사적으로 고수한다고 하지만 다음 세대의 입지는 그만큼 좁아지는 것이고 들어가는 장벽은 이미 높아진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을 역이용 할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역이용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생산에 필요한 웬만한 server software, database, language도 다 무료로 되어있기 때문에 한 달에 50불만 지출하면 2000년경에 10만 불을 투자 해야 구입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평범한 학생에게는 장벽이 올라갔지만 이런 새로운 infrastructure가 있다는 것을 알고, 활용할 줄 알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학생에게는 전례 없는 기회의 문이 열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장벽과 기회는 양극화를 가져오는 구조인데 독자 여러분의 자제분은 이런 새로운 경제 시대의 준비를 잘 하여 “양극화” 중 유리한 “극”을 차지하게 되기 바란다.
비싼 무료 Part 1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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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또는 “공짜”라는 개념은 현실을 왜곡하는 힘이 있다. 결국, 누군가는 어디선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진리를 피할 수 없는데, 인위적으로 무료로 만들면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나고, 그 차액을 누군가가 부담하거나 손해를 보게 된다. 특히, 무료 혜택을 받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사람보다 힘이 있는 경우, 이러한 왜곡은 그대로 정착되고 만다.
대표적인 예가 “무료 대학” 제도다. 한국에서는 한때 “등록금 반값” 운동이 있었는데, 브라질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주립대학(브라질의 최고 명문대학은 대부분 주립 또는 국립대학이다)이 법적으로 무료 교육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즉, 가정 형편에 관계없이 학생이 공부만 잘하면 최고의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는 제도가 수십 년째 운영되고 있다. 결과는 어떨까?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무료 대학을 독차지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비싼 사립대학을 다니거나 아예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세금을 내어 부유층 자녀들의 대학 교육을 지원해 주고, 이들이 사회적 우위를 세습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이유는 바로 입학 시험 때문이다. 남미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상파울루 대학교(Universidade de São Paulo, USP)는 입학 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데, 이 시험에서 합격하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리고 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고급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곧 비싼 사립 고등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특히 상파울루 대학교에 많은 학생을 입학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입 시험이 다가오면 대형 학원들이 우리 학교를 찾아와 무료 복습 강좌 수강증을 나눠주며 우리 이름을 사 가기도 했다. (나도 친구에게 주기 위해 내 이름을 팔았다.) 이 학원들은 이후 신문과 광고에 우리의 이름을 **“합격자 리스트”**로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자신들의 합격률이 높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문제는, 돈이 없어 사립 고등학교에 다닐 수 없던 학생들이 이러한 광고에 속아 고액을 지불하고 **“족집게 단기 속성 코스”**를 수강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보면, **“São Paulo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도 부모가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사립학교를 보낸다”**는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경우가 드물었고, 실제로 그렇게 한 사례는 나와 한국인 친구 집안뿐이었다. 브라질 친구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가정 출신이었다.
브라질 국민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고 비판하는 이 불합리한 무료 대학 교육 제도가 수십 년째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투표율이 낮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는 거의 “무료”인 미국 공립 고등학교 제도가 마치 모든 학생이 가정 소득과 관계없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학군이 지역 부동산 가격을 왜곡하여 결국 부동산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만이 우수한 공립 교육을 누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2008년 이전까지는 “우수한 무료 교육”과 함께 “부동산 투자 이익”까지 얻을 수 있는 특권 패키지가 되기도 했다. 고급 주택이 많은 지역에 위치한 New Trier 같은 고등학교는 미국 교육의 불평등을 비판한 책 Savage Inequalities에서 **“특권을 누리는 고등학교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또한, 샴버그 지역의 211학군에서는 약 10년 전 학교 운영비를 늘리기 위해 부동산세 인상 투표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주민들에게 배포된 안내문에는 **“학교가 AP 수업 등을 제공하지 못해 수준이 낮아지면, 당신의 집값도 하락합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공지라기보다 사실상 협박과도 같았고, 결국 주민들은 부동산세 인상안을 통과시켰다.
시험을 치러 학생을 선발하는 공립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이들 학교의 합격자 명단은 거의 예외 없이 입시 준비에 많은 돈을 투자한 학생들이 장악한다. 결국, 미국에서도 우수한 공립 교육을 받으려면 부유한 가정 출신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왜곡은 교육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기 가수의 공연에서는 티켓 가격과 관계없이 좌석의 실질적 가치가 정해진다. 아무리 무료 공연이라도 암시장이 형성되면서 티켓 가격이 원래의 시장 가격으로 치솟는다. 즉, 무료든 유료든 최종적으로 관객이 지불하는 비용은 비슷하며, 단지 돈이 흘러가는 경로가 달라질 뿐이다.
이는 종교 행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베네딕토 교황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야구장에서 열리는 미사 입장권을 뉴욕 내 가톨릭 교회 신도들에게만 무료로 배부했다. 그러나 결국 이 표들은 암시장에서 200달러 선에 거래되었다.
현재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대학 온라인 강의, 위키백과(Wikipedia), 무료 프로그래밍 언어와 같은 다양한 무료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시장을 왜곡하는 힘을 가지며, 누군가는 그 혜택을 보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그 여파를 가장 직접적으로 맞을 사람들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이려는 우리의 자녀 세대다.
이 문제에 대한 더 깊은 분석은 Part 2에서 다루겠다.
다음글: 비싼 무료 Part 2
비디오 게임으로 가르칠 수 없는 수학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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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가정이 컴퓨터 게임으로 인한 갈등을 겪는다. 게임에 대한 집착은 주로 남학생들에게 나타나는데,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경우도 별다른 이유 없이 연구 진도가 늦어지는 일이 많다. 십중팔구 게임에 정신이 팔려 정작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명확한 답이 없어 보인다. 한국에서는 한때 “신데렐라 법”을 시행하여, 미성년자가 자정 이후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한 적이 있다. (반면, 미국은 미국답게 개인의 책임에 맡기고 방치하는 편이다.)
이처럼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중독 치료를 진행하는 등 관련 기사와 뉴스는 쏟아지지만, 실질적으로 해결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이는 매주 새로운 “기적의 감량 방법”이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수많은 해결책이 등장하고 유행하지만, 정작 문제는 점점 더 깊어져 가는 것이다.
나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제안된 방법이 정답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이열치열, 또는 유도의 “적의 힘을 역이용 하여 공격한다”는 그럴 듯 하게 들리는 원리로 “게임으로 수학을 가르친다”는 발상이 있다. 내가 들어도 그럴 듯 하다. 심지어는 수학이 무엇인지 게임이 무엇인지 다 알만한 엘란 머스크 같은 테슬라 회사의 리더도, 또는 “괴짜경제학”의 저자인 스티브 레빗 경제학자도 “내 아이는 공부는 잠깐 하지만 게임이라면 한 없이 할 수 있으니 게임으로 공부를 가르치면 좋겠다”라는 발언을 인터뷰에서 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전부터 수 많은 “게임으로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회사가 존재해 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다 헛짚고 있다. 우선 게임으로 배울 수 있는 수학이 있고 배울 수 없는 수학이 있다.
게임으로 배울 수 있는 수학은 단순 연산이다. 미국에는 저학년 때부터 계산기를 사용하여 1. 계산기 회사의 수익을 올리고 2. 연산 실수하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노고를 최소화 하고 3. 학생들이 수학에 자신을 가지게 하는 1석3조의 win-win 교육 정책을 펴서 학생의 수학 실력만 희생을 당하고 있다. (다들 “이제는 컴퓨터 시대라 연산이 중요하지 않다”라고 하는데 이는 연산을 이미 익힌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혜택을 누리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연산이 약한 경우에 발생하는 파생 효과를 인지 못해서 하는 소리이다.) 간단히 말해 게임을 사용하면 이 연산실력을 “자연적”으로 만회 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이는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단 현실적으로는 게임에 빠진 학생들이 이 연산을 자꾸 시키는 거추장스러운 게임을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특히 연산 없이 즐길 수 있는 더 재미있는 게임이 무료로 널려 있는 요즘 세상에서 말이다. 그리고 대체 어느 일류 게임 개발자가 자신의 작품을 수학 문제로 오염시켜 악평을 자청할 것인가?도 궁금한 점이다.
연산은 어떻게 해서건 게임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그 다음 수준부터의 수학은 게임으로 포장할 수가 없다. 우리가 학생에게 수학을 필수 과목으로 가르치는 이유는 컴퓨터와 연산 속도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컴퓨터를 지배하기 위해서이다. 즉, 우주에서 시작하여 인간 심리까지의 원리를 파악하여 컴퓨터로 하여금 상황을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 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런 수학은 반사신경으로 배우거나 풀 수 있는 수학이 아니다. 몇 시간은 물론, 며칠, 심지어는 몇 년을 생각해야 하는 수학이 되는데 그런 수학을 어떻게 게임으로 포장한다는 말인가? 이는 “명상” 또는 “인내심”을 게임으로 가르친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발상이고 비슷한 효과를 예측할 수 있다.
어떤 분야이건 돈이 많으면 “과학연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60년대에는 “의사가 선호하는 담배”라는 광고도 있었고 “담배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과학 연구도 있었다. 그 후로 달라진 바가 없어 요즘은 이 게임의 혜택에 대한 “과학 연구”를 접하게 되는데 학부모님들은 현혹되지 마시고 게임으로 배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 하셔서 현명이 대처 하시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