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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와 스페인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나?

By James H. Choi
http://Korean.SabioAcade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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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외국어를 하나 선택하게 되어있다. 한 특정 언어를 익히는 것이 목적이라면 배우고 싶은 언어를 선택하면 되니 더 이상 논할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문학에 심취한 학생이라면 어느 언어를 배워야 하는지가 명확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장래에 내게 돌아오는 이익을 극대화 해 줄 언어를 선택하려고 하는데 미래가 불투명하니 언어 선택도 불투명해진다. 예를 들면 “의학이나 법을 전공하면 라틴어가 도움이 된다” 같은 조언은 어떤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할 지 모르는 학생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외의 전공을 선택 하려는 학생은 라틴어를 피해야 하는지도 확실치 않다.
한데 의학이나 법을 전공하면 라틴어를 선택해야 할까?
라틴어는 죽은 언어이다. 즉, 현재 세계 아무데서도 라틴어를 사용하는 국가/지역/부족이 없고 따라서 라틴어를 사용하는 경제 활동도 전무하다. 라틴어가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로마제국의 언어였기 때문에 그 후광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가 고대 그리스어와 아울러 “서구문명”의 시초가 되었기 때문에 정치, 법 등 많은 분야의 원조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 용어가 지금도 라틴어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지금도 라틴어를 따와서 명명하는 관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울 때 한문을 아는 사람이 유리하듯 의학이나 법학을 배우려면 라틴어를 아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이 나온 것이고 이는 맞는 조언이다.
그렇다면 스페인어는?
포르투갈어, 불란서어, 스페인어, 이태리어는 원래 라틴어였다. 로마가 멸망하고 나서 이베리아반도 지역이 독립 국가가 되면서 그 지역의 “방언”이 졸지에 “언어”로 승격 되어 현재의 스페인어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반도 중에서도 “갈로 항구” (Porto Galo) 지역이 독립 하면서 그 지역의 “사투리”가 포르투갈어로 둔갑한 것이다. 로마 제국 영토에서 갈라진 언어는 다 비슷하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의 차이는 사투리 차이 수준이지 다른 언어라고 부르기가 어색할 지경이다. 함경북도 사람이 경상남도 사람과 대화하는 차이 정도이다.
따라서 라틴어를 배워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그 후손의 언어를 배워도 다 얻을 수 있다. 내가 이렇게 확언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포르투갈어에 유창하여 미국 영어에서 그 혜택을 직접 체험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영어를 배울 때 라틴어원에서 오는 고급 단어를 쉽게 이해하곤 했다. 브라질에서는 일상생활 용어였기 때문에. 예를 들어 영어로 ameliorate라는 단어는 일반인을 잘 모르는 고급단어이지만 나는 그게 바로 melhorar라는 것을 알아봤다.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브라질의 일상 용어에서 비슷한 소리의 영어단어로 더듬어 찾아가면 반드시 학구적인 단어가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음식을 씹는다가 mastigar인데 영어로 mastigate가 된다. Chew보다 “문자”스러운 표현이다.
영어는 여러 언어에 어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명사→형용사가 다른 어원에서 따 와서 관계가 엉뚱/난해한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명사와 형용사를 다른 어원에서 받아:
- teeth→dental,
- kidney→renal,
- lung→pulmonary
처럼 명사와 형용사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포르투갈어는 순수 라틴어에서 왔기 때문에
- dente→dental,
- rim→renal,
- pulmão→pulmonário
논리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영어의 이런 용어의 이해/암기를 단번에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수학에서도 2차 방정식이 영어로 quadratic equation 인 이유가 포르투갈어로 “제곱”이 quadrado라는 것을 알면 단번에 이해가 된다.
갑자기 포르투갈어를 예로 들어 옆길로 빠진 것 같지만 스페인어로 해도 스펠링만 약간 바뀔 뿐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으로 영어에서는 고급 단어가 스페인어/포르투갈어/이태리어의 일상 용어인 경우가 아주 흔하다. 한국어에서는 순수 한국어 표현보다 한문에서 온 표현이 존대어나, (나이→연세) 공식용어 (보내다→발송), 학술용어로 (모양→형상)간주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라틴어를 배우면 얻는다는 혜택을 스페인어/포르투갈어/이태리어를 배워도 그대로 다 얻게 된다. 그 뿐이 아니라 살아있는 언어를 배우면 여행, 우정, 연애, 사업기회 등 죽은 언어에서 얻을 수 없는 혜택이 추가된다. 특히 그 중 스페인어는 미국의 학교마다 다 코스를 제공하고 원어민이 주위에 많아 쉽게 사용할 기회가 많다는 장점도 있다. 남미로 가게되면 영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보너스도 있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로 가도 영어를 사용하는 것 보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것이 간판을 읽는 것도 쉽고 의사소통을 10배 더 원활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장래에 미국 전체를 휩쓸고 다니며 각계각층을 만나 소통하는 커리어를 희망하는 학생에게 (정치가, 사업가, 교육자) 스페인어의 구사 능력은 나의 경쟁력을 지나 필수조건까지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라틴어 대신 일석다조인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
단 고대 로마의 문학을 읽고자 하는 학생, 로마시대의 문서를 읽고자 하는 학생은 반드시 라틴어를 선택해야 한다.
- http://www.memoriapress.com/articles/why-Latin-Greek.html
- http://ancienthistory.about.com/cs/whystudyclassics/a/whystudylatin.htm
- http://educationalissues.suite101.com/article.cfm/learn_latin
- http://en.wikipedia.org/wiki/Romance_language
- 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renal
- 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pulmonary
- http://dictionary.reference.com/browse/ossify
비디오에 나온 사이트 리스트
“잠재력”의 개념이 사라졌다. 일찍 시작하라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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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터뷰를 할 때면 그 지원자의 능력 외에도 “잠재력”을 보곤 했다. 이는 지금 내가 면접하고 있는 이 지원자가 완성 상태가 아니고 더 성장이 가능하며, 내가 곧 혜택을 누릴 만큼 그의 성장 속도가 빠를 것인가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것이 왕년의 인터뷰였다.
이 잠재력을 보는 자세는 비싼 장비를 사용하는 분야에서 더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1980년대에 영상처리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업무는 최소 수 천 불의 카메라와 수 천 불의 영상 캡쳐 장비가 필요했고 대학원에서 가르치는 수준의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무도 취미로 영상처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포토샵은 커녕 원도우도 나오기 전의 이야기이다.) 이런 시절에는 잠재력을 알아보는 통찰력이 채용의 성패를 갈랐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학생이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모두 다 내 대학원 시절의 크레이 수퍼컴퓨터 보다 빠르다. 이는 비싼 추가 장비를 살 필요 없이 일반 컴퓨터의 CPU만으로도 영상처리를 하고도 남게 되었다는 뜻이다. 초고속 처리를 위해서는 영상처리용 특수 하드웨어가 필요할 수 있는데 이게 바로 요즘 유명해진 GPU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특히 남)학생이 이미 게임하느라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마다 다 카메라가 내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모두의 손에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가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으로 들려있다. 그 외 개인이 집에서 촬영할 수 없는 엑스레이나 인공위성 사진 같은 사진도 인터넷에 클릭 하면 몇 분만에 분석을 시작할 수 있다.
하드웨어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 갖췄다 하자. 하지만 대체 어디서 시작을 해야 할까? 영상처리 알고리즘은 유튜브에 무수한 강의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게다가 OpenCV같은 막강한 알고리즘이 무료 라이브러리로 제공이 되어 기본 지식이 없는 학생도 영상처리를 시작하지 마자 뚝딱 레고 쌓듯이 시연을 완성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단순한 시연물은 너무 쉬워서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것도 못하는 학생은? 성적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코스에서 A는 의미가 없지만 B는 확실히 실력 없음 증명 해 주는 의미를 가진 것과 같은 상황이 아닌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강의가 범람하는 현실에서 이 분야를 알지도 못한 채 오로지 “잠재력”만으로 가늠해 주십사 하고 면접에 임한 지원자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제부터 관심을 가질까? 가르치면 배울까?
요즘처럼 인공지능기반 영상인식 발전에 대한 뉴스가 매 주 폭풍처럼 몰아치는 시대에 물 한방울 맞지 않고 꼿꼿이 버텨낸 사람이 사내 직원 트레이닝에는 꿈쩍을 할까? 취업준비라는 엄청난 압력 속에서도 안 배우고 버텨낸 사람이 안정된 정규직으로 채용 되면 굴할까?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할 기회는 이제 거의 사라지고 있다. 왜냐하면 가랑비도 오래 맞으면 젖는 경쟁자 누군가가 이미 이 분야를 상당 익히고 지원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발에 채이는 것을 한번 집어 볼 정도의 호기심, 유튜브에서 설명을 찾아볼 적극성, 따라하며 익힐 수 있는 능력과 추진력을 갖춘 지원자가 동시 지원한다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대학 지원도 마찬가지이다. 전에는 고등학생 시절이 꿈을 꾸는 시기였다. 그래서 대학은 학생의 “잠재력”을 보고 판단해야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변했다. 영화감독이 꿈이라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유튜브 채널에 올라가 있어야 한다. 음악이 꿈이라면 공연 비디오가 올라가 있어야 한다. 작가가 꿈이면 하다못해 자비로라도 책을 출판을 하여 아마존에서 판매하고 있어야 한다. 과학자가 꿈이면 데이터로 분석 능력을 과시하고 그 연구 과정을 동영상으로 똘똘하고 당차게 설명을 해야 한다. 수학자가 되고 싶으면 증명을 못 할 지언정 가설을 더 깊이 연구한 결과물을 공개해야 한다. 로봇공학자가 꿈이면 ESP32로 움직이는 기계를 제어한 결과를 찍은 동영상의 링크를 지원서에 포함시켜야 한다.
놀라운 것이 내가 위에 열거한 것을 학생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도구를 사용하여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로봇 공학처럼 비용이 드는 분야도 100불 미만으로 시작이 가능하다. 디지털 세대에 태어나 열정을 가졌다고 하면서 이 정도의 디지털 결과물을 제출하지 못하고 아날로그 “잠재력”만 호소하고 있으면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일찍 시작하는 것이다. 다들 지원서에 자신의 열정은 어려서부터 있었다고 주장할텐데 그렇다면 어려서부터 열정을 가졌던 것을 보여야 한다. 수영 선수로 대입 지원하려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7학년 때 수영대회에 참가한 사진이 있을 것이다. 악기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그렇다면 과학, 엔지니어링, 수학 같은 전공을 지망하는 학생도 정말 어려서부터 열정이 있었으면 어려서부터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했을 것이 아닌가? 입상했건 못했건 과학경진대회에 무엇인가를 들고 출전했을 것이 아닌가? 수학 경시대회에 참여했을 것이 아닌가?
활동을 돈으로 사는 학생이 있다. 수학경시대회의 답안지를 구매하여 고득점 하고 대필논문을 구매하여 과학경진대회에 출전하는 학생이 있다. 정말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정직하게 실력을 길러온 학생도 대입사정관의 눈에는 이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답안지 구매한 학생이 더 높은 성적을 제출할 것이고 실제로 그런 학생이 합격하는 것을 수없이 봐 왔다.
내가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일찍 시작하라. 대개 과학 수학는 대학 가서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왜 운동이나 예술은 어려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당연시 하면서, 수학 과학은 그 주체 못하는 열정을 꾹 참고 지원서 활동 난을 공백으로 제출하란 말인가? 어린 나이에 흥미가 있을 때, 호기심이 발동할 때, 시간도 있을 때, 가르치고 배우고 성장하기 시작해야 한다. 특히 가짜들은 다 11학년이 돼서야 활동기록을 사 모으기 시작하기 때문에 일찍 시작하는 것이 내가 진짜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조금 앞서 있다고 안심하면 막판으로 반칙에 역전 당할 가능성이 남아있게 된다.
반칙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리 하려면 우위에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압도적으로 앞서야 한다. 일찍 출발하여 나중에 누구도 편법으로 범할 수 없는 거리를 벌려 놓는 것이 정석이다. 쇼트트랙 스케이트가 좋은 예이다. 한 선수가 압도적으로 저만치 앞서 있으면 반칙도 불가능하다.
은퇴 자금은 일찍부터 저축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효과적이듯 잠재력의 실현도 일찍 시작하는 것이 실천 하기도 쉽고, 학업에도 도움되고, 대입에도 유리하고, 인생에도 유리하고, 떳떳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이 충만하고, 사는 것도 즐거워지고, 친구도 유유상종하여 건전하고, 가정도 평화롭고, 따라서 학부모의 부부 사이도 저절로 화목해지는 최고의 전략이다.
물론 “아니 학교가 가서 배우는 곳이지 다 배운 후에 가는 곳인가?”라고 항의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항의하는 독자님이 대입 사정관이라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어려서부터 만들어 온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는 학생과, 잠재력만 가져와서 항의 하는 학생 중 누구를 합격 시킬 것인가?
변해가는 추천서 작성 양식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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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사정관의 입장에서 보면 지원자가 제출하는 모든 서류중에 추천서가 가장 가늠하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 국제적으로 지원자가 몰리는 대학에서는 각 추천서 필자가 속한 문화의 차이까지 감안 하여 신뢰도를 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다. 내가 대입 사정관과 이야기 해 보면 그들은 경험으로 어느 문화의 추천서에 거품이 많이 들어가 있는지 알고 있고 그에 맞추어 discount를 적용하여 내용을 해석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기 학생을 “100년에 한명 태어날까 말까하는 천재”라고 평하는 추천서는 100년에 한 번 써야 하는데 매년 쓰면 웃음거리가 되고 무시를 당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 수 많은 대학에 그 수 많은 추천자가 온갖 형용사로 추천을 하는데 어떻게 추천자의 정직/정확도를 측정한다는 말인가? 연륜이 있는 고등학교에서 연륜이 있는 대학으로 진학할 경우에는 과거의 추천서 기록이 있지만 생소한 추천자의 글은 무슨 기준으로 신뢰/불신을 정할 것인가?
내가 지난 몇 년간 추천서를 쓰면서 이 신뢰문제가 해결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추천서 제도는 다음과 같이 변해가고 있다.
우선 첫째 추천자의 정체를 확실히 확보하려 하고 있다. 이름, 기관, email 전화번호는 물론 심지어는 내 생일까지 알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이는 추천자가 누구인지 절대로 동명이인을 혼동하는 일이 없이 구별해 내기 위한 방책으로 보인다. 둘째로 추천서 대행 접수 전문 회사가 생겨나고 있다. 공통 지원서로 대학에 지원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따라서 학생이 두 학교에 지원 해도 추천은 한번만 하면 된다. 추천자로서는 시간이 절약 되지만 이학교에 이소리 저학교에 저소리 못 하는 단점이 있다. 즉 앞뒤가 맞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셋째로 학생을 평가하는 측정 방법이 수치적/객관적이다. 이제는 두루뭉실한 형용사를 사용할 수 없고 각 분야마다 1에서 5까지의 점수를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 학생은 리더쉽이 대단하다”라고 할 수 없고 리더쉽 부분에서 1점에서 5점사이에서 한 점수를 골라야 하고 “실패를 겪어도 쉽게 재기하는가?”에 점수를 주어야 한다. 이런 객관적인 수치로 평가를 요구하는 것은 학생을 정확히 평가하는 외에도 추천자의 평균 점수를 쉽고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한 것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즉 같은 4점 이라고 하더라도 원래 후한 사람이 주는 4점과 까다로운 사람이 주는 4점의 차이를 구별해 내어 반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런 변화가 왔는지 정확히 기억은 못하겠는데 지난 몇 년간 큰 기관에게 보내는 추천서를 쓰는 일은 더 이상 편지를 쓰는 것 같지 않고 무슨 답안지 작성하는 것에 더 가깝게 느껴지게 되었다. 이 변한 형식을 사용하는 곳은 내가 추천서를 보낼 기회가 있었던 보딩스쿨, 장학재단, 인턴쉽, 대학지원 다 한결 같이 마찬가지였다. 물론 질문 마다 1~5 점수를 정하는 외에 자유 문체로 내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 공간도 있기는 한데 150자인가 250자로 제한하고 있어서 조금 쓰다 보면 바로 글자 수를 초과 했다고 경고가 나와 나중에는 아예 처음부터 격식을 갖춘 문장은 포기하고 간단한 몇 마디 용건만 쓰게 되었다. 추천서는 쓰는 것도 큰 일이지만 읽는 것은 더 큰 일이라 그런 글자 수 제한을 하는 것이라 짐작된다. 그 자유 문장도 컴퓨터가 분석하여 점수를 배정하지 않나 싶다.
만약 한 사람이 쓴 모든 추천서가 한 database에 들어가 있어 종합 분석되는 시대가 도래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모든 추천이 상대 추천이 된다. 즉, 내가 쓴 추천에서 준 5점의 가치는 내가 그 동안 5점의 점수를 준 학생의 활약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다. 내가 만약 평범한 학생에게 상습적으로 5점을 주어 왔다면 5점을 받는 학생은 평범한 학생이고 그 이하를 받는 학생은 학습 지진아로 판단이 될 것이다. 따라서 추천서에 영향력이 있기 원하는 교사는 평상시 추천 점수의 평균을 3점 정도로 유지해야 5점을 줄 때 가치가 돋보이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제는 더 숨을 곳도 없는 각박한 세상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정확한 평가를 받는 세상이 된다고 볼 수도 있다. 학생도 자신의 수준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게 되고 추천서를 쓰는 사람도 본의건 아니건 문화나 스타일에 관계 없이 정확한 의도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 세대의 학생과 인터넷 세대 부모 모임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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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말하는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어른의 한탄은 수 천년 전 기록된 바빌로니아의 쐬기 문자에도 등장한다고 하니 이는 영원한 세대차이의 문제이지 “요즘”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 나라에서 한 언어를 사용하며 대대로 살아 오는 가정, 즉 확고한 정체성에 튼튼한 뿌리로 무장한 가정에서도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세대 차이의 갈등이 있다. 이민가정에는 그 위에 언어 차이, 문화 차이까지 겹치게 된다. 그것만 해도 인간 사이에 견고한 벽을 형성 시키는데 요즘같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서는 가치관 차이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쯤 되면 앞이 캄캄해질 만 한데 현실은 더 어렵다. 이번 세대의 학부모의 현실에는 더 거대한 존재가 있으니 이는 컴퓨터/인터넷이다.
이 컴퓨터/인터넷으로 인해 발생하는 교육/양육의 문제는 동서고금 전례가 전혀 없다는 큰 제약이 있다. 수 천 년을 이어온 재래식 교육 방법도 아직까지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라는 서로 상반되는 이론과 의견이 난무하지만 그래도 주장하는 양측 다 자신의 방법으로 성공/실패한 사례를 열거할 수 있고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관찰에 반영하여 나름대로 정리하고 나의 사정에 맞는 근거 있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하지만 초중고생의 교육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것은 인류역사 초유의 현상이라 성공 실패의 자료가 없고 따라서 근거에 의한 이론을 제시할 수가 없다. 교사, 학부모, 전문가, 일반인 모두 다 미루어 짐작하고 있을 뿐이고 지금 학생은 본의 아니게 거대한 교육 실험의 모르모트가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올 해부터 New Trier 고등학교는 교과서를 Tablet으로 대체했다. 학생들이 무거운 책 여러 권 들고 다니는 대신에 가벼운 tablet 하나로 대체하는 것이 그럴 듯 하지만 이는 “미국 학생의 성적이 저조한 원인은 책의 무게다”라는 연구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다. 책을 구입하는 비용을 절감했다고 하는데 우선 교과서의 비용이 tablet의 가격보다 교육의 질을 저하 시킬 정도로 부담스러웠는지 조사한 결과를 본 적이 없다. (교과서는 10년도 물려가며 사용하지만 tablet은 2년 후에 개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초중고생의 몇 프로가 tablet 을 사용하며 게임의 유혹을 이기고 학업에 집중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자료도 본 적이 없다. 내가 테크놀로지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있어서가 이렇게 의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교육 테크놀로지 개발과 응용에 첨단을 달리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내 눈에는 어설프게 비싼 장비만 도입하여 뭔가 “정보 시대의 교육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모습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컴퓨터/인터넷 정책은 우리가 임의로 바꿀 수 없으니 운명에 맡긴다고 하자. 하지만 우리에게 결정권이 있는 집에서는 아이들이 어떻게 언제 어떤 식으로 컴퓨터/인터넷을 사용하도록 길러야 맞는 것일까? 통계적으로 맞는 답이 밝혀지는 것은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야 나올 것이기 때문에 기다릴 여유가 없다. 오늘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학부모님이 오늘 직감으로, 시행착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현재 학생의 학부모님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인터넷/컴퓨터 사용에 선을 긋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인터넷을 통해 가르치는 학생을 webcam을 통해 보면 자신의 방에서 수업하는 학생도 있지만 부엌에서 수업 하는 학생도 있고 거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이렇게 학부모님이 볼 수 있는 곳에서만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기는 한데 그 외에 다른 방법도 있을까? 그리고 학생이 컴퓨터/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은 어떻게 정해야 하나? 현재 의견은 많지만 아무도 정답을 모른다.
정보의 중요성, 게임 중독의 심각함 등을 고려하면 이 현명한 인터넷 사용 제재가 학생의 성패를 가르는데 틀림없이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시카고 지역에는 “좋은 부모 모임”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 학부모님에게 가이드가 되고 있지만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인터넷 세대 부모 모임” 이다. 아직 아무도 이 주제를 가르칠 자격이 없으니 우선은 학부모님끼리 만나 서로의 지혜를 나누는 장을 만드는 것이 첫 단계라고 생각된다. 어차피 시행 착오로 진실에 접근해야 하니 여러 사람의 착오를 듣고 배워 내가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만해도 모든 참가자에게 큰 이득이 되리라 생각된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우선 이 글의 아래 댓글로 제안을 해 주세요.)
영어 구사력은 like 발언 횟수에 반비례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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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내용을 표현하는 다음 두 가지 문장이 있다.
“제가 어제 집에 가는데 비가 왔어요.”
“제가, 어, 어제, 어, 집에, 어, 가는데, 어, 비가, 어, 왔어요.”
독자 분들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어느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을 선호 하시겠는가?
YouTube를 보면 STS나 Google 같은 과학경시대회에서 입상한 학생의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이 학생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참 조리 있게 어른스럽게 유식하게 영어를 구사한다. 그런 긍정적인 인상을 주는 이유는 물론 그들이 지식인의 어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에 있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자신을 멍청하게 보이는 단어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데 있다. 그 단어는 “like’ 이다. 나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그들이 입상을 하고 나서 like 사용을 중지 한 것이 아니라 like 사용자는 다 떨어져 나가고 남은 학생 사이에서 입상자가 탄생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Like 는 전반적으로 젊은 세대가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이 like의 특징은 아무런 이유도 의미도 없이 문장의 중간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몇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like를 사용치 않도록 가르치지만 내가 본 글렌뷰의 한 중학교의 선생님 몇 분은 솔선수범해서 like로 문장을 채우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저런 선생님 밑에서 배우는 학생은 like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like 의 용도도 점점 광범위 해지고 있다. I was like “where are you?”. 라고 하면 “‘너 어디 있니?’ 라고 내가 물었다”가 된다. I was like yes. 라고 하면 “나는 ‘예’라고 대답했다”가 된다. 그 외에도 like는 그때 그때 내가 원하는 임의의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한 학생에게 “장래에 어떤 일을 하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답이 “Like….” 였다. 뒤에 무슨 문장이 따라나올 것이라 착각한 나는 다시 두 번 더 물었는데 답은 다 똑 같이 매번 “Like…” 였고 우리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이런 어휘의 범위를 줄이는 화법은 한국어의 “좀 그렇더라구요”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표현력을 줄이고 정작 필요할 때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 어색한 공간을 다시 like 로 채우게 만든다. “‘그렇다’는 표현을 사용 안 하려니까 좀 그렇더라구요.”
한데 미국인이 널리 사용하는 like를 나는 왜 이렇게 마치 무슨 악의 근원인 것처럼 폄하하고 있는가?
언어에는 격이 있기 때문이다. 장래에는 바뀔 수 있지만 현재의 like 는 발언자의 격을 낮추고 그 외의 다른 일의 수행 능력도 의심받게 할 수 있다. 일상 생활에서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쟁을 뚫고 선택을 받아야 할 경우, 그리고 그 결정자가 기성 세대의 지식인일 경우 공식은 달라진다. STS 수상자처럼 선발 되기까지 학생이 거쳐야 했던 여러 명과의 여러 단계의 인터뷰/심사 과정에 like 를 남발하고 있으면 자신이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선언하는 것이고, 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무의식 속에 “흔히 볼 수 있는 학생”이라는 인상을 남기는 것이니 like없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 “야무진 학생”으로 인상을 남기는 경쟁자에서 밀려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나만의 의견이 아니다. 내가 함께 일하는 대학 교수, 연구소 소장 등 지식인은 내가 내 학생들에게 like 남용을 지적하는 것을 옆에서 듣게 될 경우에는 한결같이 반색을 하며 환영을 한다. 이들은 모두 추천서를 쓰는 위치에 있거나 직접 선발/합격/취직을 결정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Like를 사용치 않는 학생은 단번에 내 눈에 뜨이는데 물어보면 한결같이 부모님의 가정교육 덕분이라고 한다. 이 부모들은 아이를 사회에 경쟁력을 가진 일원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교육뿐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의 격까지 가르치는 것이다. 아이가 부모보다 영어를 잘 하는 이민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그저 영어를 잘 하는 것만으로 신통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격도 like의 횟수로 미루어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유심히 보면 아이들의 친구 중에 like를 사용하지 않도록 훈련 받은 아이가 있다는 것도, 그리고 이들은 자라나며 어른에게 주는 야무진 인상으로 결정이 나는 일에 탁월한 혜택 수혜의 능력을 보인다는 것도 보이게 될 것이다.
앞으로 40년이 지나 지금 어린이 세대가 중년이 되면 그 때는 지도자가 “I have, like, a dream, like.” 이라고 관중의 가슴에 와 닿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학생은 오늘 경쟁하고 like를 혐오하는 세대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한다. 평범한 생활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 평범한 화법을 구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장래에 여러 단계의 선발/심사/인터뷰를 거쳐 높은 위치로 오르기를 희망하는 학생은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언어 구사를 처음부터 리더답게 시작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