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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The Economist지를 즐겨 읽는 이유

내가 The Economist를 즐겨 읽는 이유

By James H. Choi
http://Korean.SabioAcademy.com
원문출처

나는 뉴스를 접하는 회수가 “weekly” 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24시간 News radio들으며 시시각각 일어나는 일을 알게 되는 것은 알 가치/필요가 없는 정보를 수신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정작 깊이 알아 할 것은 하나도 모르고 넘어간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한데 나는 daily도 같은 이유로 피한다.  매일 신문을 읽는 것도 너무 횟수가 잦고, 시간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었던 것을 며칠동안 호들갑 떠는 우여곡절에 끌려 다니게 된다.

그렇다고 Year Book으로 내가 사는 시대를 접하는 것은 너무 뒤늦게 현실을 파악하는 양상이 된다.

그래서 내게 가장 적절한 절충은 주간 뉴스이다.  나는 지난 수 십년 동안 이런 저런 주간 시사지를 읽어왔는데 대학 시절에는 Time지를 몇 년 읽었고 커리어를 시작하면서는 Businessweek과 Newsweek을 읽었다.  한데 이 시사지들은 시간이 가면서 뭔가 맹~ 한 느낌을 주는 글들이 많고 Businessweek은 뻔한 소리를 칼럼이라고 쓰는 글들이 많았다.  또 판매 부수를 올리기 위해 몸부림하는 기사들도 여러가지 등장하여 내 심기를 건드려서 나는 결국 다 구독을 취소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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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conomist는 내가 우연히 알게 되어 읽기 시작한 주간 시사지이다.  우선 이 시사지의 이름은 역사적인 이유로 “The Economist”이지만 실은 경제만 다루지 않는다.  경제는 전체 내용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 시사지는 무엇보다 필체로 나를 끌었다.  정중한 언어로 각 국가의 정치인을 모욕하는 표현이 웃겨서 (예: 일본의 정치인을 “charisma-light” 또는 Somalia의 “increasingly notional president” 등) 낄낄 거리며 빨려 들어가고, 언급을 하지 않지만 완곡한 비유로 끔찍한 상황을 표현하는 어법도 매력적이었다.  예를 들면  “focuses the mind”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Nothing focuses the mind like a hanging” (“교수형처럼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은 없다”)라는 영어 속담의 뒷 부분만 떼어내서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속담을 아는 독자는 “정신집중” 이 나타나면 “교수형”이 곧 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 때 부터 영국의 록 밴드들과 서구의 문화에 심취해서 자라났기 때문에 나는 The Economist 기사에, 특히 제목과 부제목에 사용하는 가사 인용을 상당히 알아본다.  이는 나의 성장 배경뿐 아니라 이 글을 쓰는 사람과 내가 같은 세대에 속하는데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본다.  한 예를 들어 “Migration and business” 기사는 모든 부제목을 Led Zeppelin의 곡명만 사용하여 쓰기도 했다.  나같은 Led Zeppelin의 fan은inside joke를 알아 들은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다른 예를 들어 Argentina의 전 대통령이자 현 대통령의 남편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The Economist의 기사 “The End of an Era“의 부제목은 “What Happens Now?”였다.  Lloyd Webber의musical인 Evita 의 가사를 아는 사람은 무릎을 내리치며 그 기발남에 감탄을 할 인용이었다.  Evita에서 대통령의 부인이 암으로 죽어가는 장면에 부인의 인기에 정치적 생명이 달려 있던 대통령 Peron이 부른 가사가 바로 “So what happens now?” 였기 때문이다. 이 “What happens now?”의 인용 의미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작곡가 Andrew Lloyd Webber와 작사자 Time Rice모두 영국인이다.  Evita가 나왔을 때 (지금도) Argentina인은 영국이 Argentina의 내부 정치에 대해 간섭한다고 싫어 했다.  그리고 영국과 Argentina는 Falkland 전쟁으로 인해 사이가 더 악화되고, 그 후로 별다른 개선 없이 오늘까지 온 상태다.  즉, Argentina 대통령 배우자의 사망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영국지가 다시 한번 해묵은 앙금을 꺼내 Argentina의 비위를 쿡 건드려 본 것이다.   물론 이는 나의 해석일 뿐인데 나는 이렇게 제목만 가지고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으니 The Economist를 재미있게 읽는 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The Economist는 많은 문학의 유명한 구절을 슬쩍 슬쩍 인용한다.  내가 놓치고 있는 문구가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그래도 알아보게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아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고 어디서 나온 어떤 문구를 이용한 것이지 알아 챌 때 마다 내 “어깨가 으쓱” 한다.

하지만 위에 설명한 특징은 내가 심각한 시사지를 낄낄 거리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요소일 뿐 내가 이 The Economist를 매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페이지도 빠트리지 않고 읽는 이유는 아니다.

우선 내가 한 페이지도 빠트리지 않고 읽는 이유는 읽지 않고 듣기 때문이다.  The Economist는 구독자에게 모든 내용을 mp3 음성으로도 제공한다.  나는 목요일 저녁마다 그 주의 issue를 mp3 로 download 해서 듣기 시작하는 것이 낙이다.  운전하며, 식사하며, 운동하며 들으면 토요일이면 다 듣게 된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바빠도 운전과 식사는 해야 하니까 The Economist는 읽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들을 The Economist가 없는 일요일에서 목요일까지는 다른 mp3 독서를 지속한다.  The Economist에 나오는 기사 중 가장 재미없는 부분이 영국 이야기 인데 그래도 그냥 듣는다.  페이지를 넘기며 읽는다면 여러 페이지 넘기는 것을 고려해 볼텐데 mp3 player가 혼자 다음 기사로 넘어가니 내가 굳이 나서서 몇 기사를 건너뛰기가 귀찮다.

내가 이 시사지를 중독적으로 읽는 이유는 “나와 죽이 맞는” 사람들이 쓴 글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니 “나와 죽이 맞지만 나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쓰기 때문이다.  우선 시각이 미국 중심이 아니다.  미국은 크고 중요한 나라임이 틀림 없지만 세계 여러 나라중에 하나의 나라일 뿐이다.  4개국에서 거주해 본 나는 미국중심의 뉴스를 보면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에 비해 The Economist는 (BBC도 마찬가지)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독자에게 알리기 때문에 다른 뉴스에 비해 국제적인 시야를 가지게 된다.  이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나는 우리 2세들에게 아주 필요한 시야라고 나는 믿는다.  “국제 언어”인 영어를 이미 구사한다고 해서 시야도, 지식도, 경험도 자동으로 “국제화”가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이다.  미국인 특유의 미국밖에 모르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배우기 적격이다.

그리고 The Economist에 나오는 Science and Technology는 journalism을 배운 사람이 science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 science 한 사람이 journalism을 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 항상 깊이가 있고 내게도 유용하다.  (The Economist에서 과학 기사를 쓸 인턴을 고용하는 공지를 보면 “과학을 전공한 사람 중에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을 찾습니다”라고 나온다.)  내 학생들이 과학 경시대회에 나갈 주제를 흔히 이 과학 기상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몇 주에 한번 나오는 Special Report는 한 주제를 깊이있게 다루는 것인데 나라마다 돌아가며 분석을 한다.  이 Special report는 각 나라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가장 간략하고 가장 정확한 분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Special Report는 사회적, 과학적 trend를 분석하기도 한다.  2주 전에는 3D Printer가 제 3의 산업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는 깊이있는 분석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내가 The Economist를 즐겨 읽는 것은 그 유명한 영어 어휘와 표현력 때문이다.  Time이나 Newsweek은 독자층을 늘리려 점점 단순한 어휘와 표현으로 희석되어가고 있지만 The Economist는 영국식 spelling을 사용하고 어려운 단어를 주저없이 독자에게 던지면서도 발행부수가 늘어가고 있는 유일한 출판물이다.  가격이 가장 비싸면서도 더 저렴한 시사지에 비해 구독자가 늘어가고 있는 현상으로도 유명하다.  “국제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꼭 읽어야 하는 시사지로 인식이 되어버린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그런 도도함이 글에서도 느껴지고 나는 그런 건방진 자세가 마음에 든다.

내 column에 쓰는 글에 등장하는 idea의 출처를 대라고 하면 아마 number 1은 내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읽고 얻은 idea의 출처를 대라고 하면 그리고 내 문체/표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출처를 대라고 하면 아마 둘 다 The Economist일 것이다.

그리고 누가 “당신의 문장 구사력의 궁국적인 목표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The Economist에 나오는 글 처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는 고등학생에게 그리고 global leader, 국제 지식인이 되는 것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모두 이 The Economist로 모든 뉴스를 접하라고 추천한다.   TV, radio, newspaper는 끊어도 된다.  The Economist를 읽으면/들어면 최소한의 시간으로, 가장 중요한 뉴스를, 가장 깊이 알게 될 것이다.

The Economist 공식 사이트

아마존에서 The Economist 구독

https://i1.wp.com/dl.dropbox.com/u/6378458/Column/Info/Korean/Copyright.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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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renda
    5월 9, 2012 10:36 오전

    저는 이렇게 해석을 덧붙인 선생님의 글이 더 재미납니다.

    • Brenda
      5월 9, 2012 10:56 오전

      아이들이 이 글을 읽으면 열심히 챙겨보는 Time 대신, 구독받고 있는데 관심밖인, 먼지 쌓여가는 The Economist 에 흥미를 갖게 될 것 같은데, 혹 이 칼럼을 영어로 쓰신글이 있으신가요?

      • 5월 9, 2012 12:57 오후

        영어로 된 초안은 있는데 링크등 걸어야 합니다. 조만간 제 영어 칼럼에 올라올 것입니다.

  2. Chan Eun
    7월 18, 2014 3:53 오전

    안녕하세요~ 1년째 매주 PO로 이코노미스트를 구독하고 있는 대학생인데요 궁금한점이 있어서 댓글 남깁니다. mp3파일을 받기 위해서는 오디오 에디션에 별도로 등록, 결제를 해야하는 건가요? PO로는 오디오파일을 지원하지 않는건지, 오디오 에디션에 대한 설명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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