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Middle name을 꼭 사용하세요
Written on November 27, 2009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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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흔한 First Name은 Mohammed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가장 흔한 Last Name은 Wang이라고 들었습니다. (Lee라고 하는 설도 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가 세상에 가장 흔해야 할 Mohammed Wang (또는 Mohamed Lee)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려면 dependent event, independent event를 이해하게 됩니다.)
세상에 가장 Last Name의 수가 한정된 국가는 한국이라 생각됩니다. 100 most popular last names 를 가진 사람은 인구의 99%를 넘습니다.
한국은 대신 First Name 들이 다양합니다. 이는 아마도 성으로만 사람을 구별하기 어려운데서 나온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에서 다양한 ring tone이 먼저 개발 된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아마도 100 most popular first names 를 가진 인구는 전체의 1%도 안되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한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 한 반에서 같은 성을 가진 학생들은 많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경우는 흔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평생 “최”씨는 무수히 만났지만 별로 유별날 것이 없는 제 한국이름을 (“형준”)가진 사람을 다섯명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중매체에서 보는 인물을 합해도 10명 이하로 기억합니다. (박형준이라가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그 반대입니다. 100 most popular last name을 가진 사람은 인구의 1%도 되지 않을 것이지만 100 most popular first name 을 가진 사람을 인구의 상당 수를 차지한다고 생각됩니다. 관광지에 가면 흔한 first name 이 새겨진 기념품을 팔 지경입니다.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문제는 이 두 문화가 만날 때 일어납니다. 몇 되지 않는 last name과 몇 되지 않는 first name을 합하게 되면 Mohammed Wang의 정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즉, 성과 이름이 똑같은 사람이 많아집니다. 이것이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학생의 현실입니다.
물론 인간은 다 존엄하고 이름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것은 잘 아는데 여러명의 서류를 이름으로 구분하는 상황이 되면 문제가 발생됩니다. 예를 들어 이번 AMC 8를 제 학원에서 응시한 학생중에 세명이 같은 성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AMC 8시험 답지에는 주소를 기입하는 난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답지는 그들의 사인을 제외하고는 전혀 구별을 할 수 없습니다. 이들의 학년까지 같으면 AMC 8 이 공식 성적을 보내올 때 이 학생 3명의 점수의 주인을 구분할 방법이 전혀 없게 됩니다. 이는 서류처리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이름 만으로 학생을 구별하도록 만든 제도에 동명3인이 출연한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결국 저는 이 세명이 다른 섹션에서 응시한 것으로 기록을 하여 공식 성적표에서 성적의 주인을 섹션으로 구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제가 답지를 발송하기 전에 이런 구별 방법을 찾지 못했으면 문제는 커졌을 것입니다.
이번 Intel Competition에 서류를 보내면서도 각 페이지 마다 학생의 이름을 적게 되어 있는데 미국이름을 가진 한국계 학생들 사이에서는 동명 2인 3인 4인이 흔했을 것입니다. 대학입학같이 거의 만명의 서류가 섞일 때는 이 혼동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혼동은 (물론 동명2인 우둥생의 기록이 내 파일로 들어오는 것을 꿈꿀 수 있지만) 학생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 경우가 생기리라 우려됩니다.
한가지 간단히 할 수 있는 것이 Middle Name을 반드시 쓰는 것입니다. SAT, ACT, AMC 모두 다 Middle Name (if you have one) 이라고 쓰는 칸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이름을 가진 한국 학생들은 한국 이름을 middle name으로 사용하니 항상 middle initial을 사용하는 버릇을 가지도록 하세요. 이번에 동명3인인 학생도 middle name들을 사용 했다면 제가 이름으로 성적을 구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John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Mohammed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라 가정하고 Kim이라는 성은 Wang이라는 성보다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라 가정을 할 때 어째서 John Kim 이 Mohammed Wang 보다 천배나 (가정수치) 많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지 이유를 자제분들에게 설명해 주시며 모든 공식 서류와 시험에 middle initial을 기입하도록 알려 주세요.
그리고 모든 공식 서류에는 한가지 이름을 같은 스펠링으로 사용하세요. 학생이 한국이름으로 불렸다 영어 이름으로 불렸다 하여 제가 제 학생을 구별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야 만만한 학원 선생이지만 그러지 않아도 분주한 대학 입학 사정관들 정신 사납게 해 봐야 득이 될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계 학생 대입 에세이의 신물나는 주제
Written on December 24, 2009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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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에세이를 지도하다 보면 한국계 학생들의 주제 #1은 아마도 “나는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다”일 것입니다. (통계자료는 없는 제 개인적인 짐작입니다.)
이 주제는 학생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issue 인 것이 틀림없는데 이 학생이 모르고 있는 것은 이 갈등이 얼마나 흔해빠진 주제인가입니다. 저같이 가끔 에세이 수정을 옆에서 흘려 듣는 사람도 “맙소사 이 학생도 또 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라고 질릴 지경인데 대입 사정관들은 이 주제로 별 차이 없는 내용을 수만번 읽었으니 얼마나 신물이 나겠습니까?
이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군대이야기 반복하는 사람처럼 그 경험이 인생에 그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기억과 사고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군대 이야기 처럼 주위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이 학생이 등장하기 전에 수만명이 벌써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했고, 관객은 이미 지겨워서 비비틀고 있는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섰을 경우에는 주제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 “나는 x 도 y 도 아니라”라는 주제는 인종 국적 외에도 인생 전반에 흔한 주제입니다. 즉, 이 학생들만이 겪는 특이한 경험이 아니고 이런 경험을 자신만의 독특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 조차 흔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외국에서 거주해야 이 “나는 x도 y도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난 동네에서 지속해서 자라난 사람도 그런 갈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물리학자 사이에서도 “나는 이론 물리도 실험 물리도 아닌 그 사이의 물리를 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그 고립감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친구도 보았습니다.
이런 “나는 x도 y도 아니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자신의 실패의 책임을 몽땅 이 “나는 x도 y도 아니다”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학생은 대체 얼마나 편파적인 우대를 기대해서 그렇게도 소외감을 느끼는지 모르지만 이 학생보다 더 긴 시간 같은 땅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학생도 “나는 것도는 외부인이야…”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또 지난주에 이민온 학생이 “여기는 참 좋은 곳이다”라고 생각하며 신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어떤 학생은 “부모가 나 어렸을 때 내 의견을 묻지 않고 이민을 왔다”라고 이민 자체가 인권침해였던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도 피해의식이고 책임전가입니다. 마치 이민을 오지 않았으면 자신이 성공적인 인생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자신의 인생의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려는 비겁한 자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다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부모가 의견을 묻지 않고 자식을 이 세상에 출생을 시킨 결과물(결과인) 입니다. 사람이 그런 과감한 결단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미 멸종 했습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이렇게 자녀 본인의 의견을 묵살한 채 (물어볼 도리도 없고) 기분 내키는대로 생명을 주고 말고를 정하는 사람들인데 이민 결정 쯤이야, 특히 모든 면에 더 나은 세계라는 곳으로 이민을 가는 것 쯤이야 자녀의 의견을 고려치 않고 결정하는 것이 충분히 있고도 남을 일입니다. 그리고 어린 자녀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해서 더 나은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초등학교부터 자녀의 의견을 극진히 존중하던 부모가 나중에 별로 성공적으로 자라지 못한 (애들 수준으로 진로를 택한 인생이니 잘 되면 운이죠) 자녀로부터 듣는 말은 감사의 인사가 아니라 “왜 그 때 억지로라도 시켜주지 않으셨어요?”라는 원망 그리고 책임전가 밖에 없습니다.
“나는 x도 y도 아니다” 의 학생에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근거없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항상 실실 웃고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의식에 잠겨살지 말고 현실을 더 직시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그런 기분의 하소연 해 봐야 일이 해결되지도 않고 아무도 긍정적으로 봐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은 환경보다도 자신의 의지에 더 달려 있는 것이고 대학 지원 에세이에 나는 이런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광고하지 말고 에세이는 보다 독특하고 보다 건설적인 경험을 보다 미래지향형으로 다루라는 것입니다.
이번주 Economist 지에 바로 “외국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기사는 foreigner란 무엇이며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꼭 “나는 x도 y도 아니다” 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고집하는 학생은 이 기사를 읽고 나면 더 조리있게 신물 좀 덜나게 “나는 x도 y도 아니다” 라는 에세이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나는 x이며 동시에 y이다” 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학생도 이 글을 읽으면 자신이 지불하고 있는 댓가를 알 수 있습니다. 프린트 하셔서 학생들에게 (다시한번 자제분의 의견을 무시하고) 꼭 읽히세요. 자제분들에게 보여주지 않으시면 나중에 “왜 그 기사를 제게 억지로라도 읽히지 않으셨어요?”라고 원망을 들으실지 모릅니다.
원하는 대학에 진학 못한 학생들에게
Written on July 3, 2007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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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대학에 진학 못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아무 대학을 나와도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옆 동네 아저씨의 조언을 믿지 않더라도 아직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갈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학입니다. 학교에 따라 제도가 다르고 제가 전문이 아니라 상세한 정보는 제공 못하지만 이 방법이 있습니다. 아무도 이 방법을 대대적으로 광고하지 않기 때문에 적극 나서야 길을 찾아 갈 수 있습니다. 이 준비는 빠를 수록 유리합니다.
다른 하나는 대학원입니다. 비교를 하기 위해 잠깐 돌아가서 대입지원은 9학년 성적부터 제출하니 사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모두 백지에 대입 지원 원서를 쓰기 시작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9학년에 어떤 과목을 할지가 이미 8학년에 결정된 상태이기 때문이고 9학년 첫 수업 시작하기 전에 우열이 이미 갈려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명문대 가는 학생들 보면 다 고등학교 신입생 때 gifted 반으로 들어간 학생들이지 중간에 혜성처럼 올라가는 경우는 저 같은 사람이 교묘하게 배후조정을 하지 않는 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대학원 지원은 다릅니다. 대학원 지원에는 고등학교 성적을 제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성적은 고등학교에 비하면 모두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AP 의 크레딧을 많이 가져온 학생은 졸업을 더 일찍 할 뿐이지 대학원 입학에 더 유리한 대학 성적을 기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처럼 의무로 4년 내내 싫은 과목을 다 수강시켜 평균점을 떨어뜨리는 일도 없습니다. 교양과목을 공부할 때 각 분야의 과목을 골고루 선택해야 하지만 첫 한 두 해로 끝나는 것이고 그것도 자신이 자신 있는 분야에 가장 가까운 코스로 골라 유리하게 끌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학원은 각 특별 활동 특기 재능을 요구하지 않고 인종별로 커트라인을 조절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개인의 실력으로 모든 것이 판가름 됩니다. 국내학생 외국학생인지도 구별하지 않습니다. 한 부서가 다 외국인 학생으로 채워져 버리더라도 그들이 가장 우수한 지원자이면 미국 학생들 마다하고 외국인들 받는 것입니다.
대학원에 다니는 것은 대학과 아주 다릅니다. 과학이나 공학계로 대학원에 가게 되면 학비 면제는 물론 대학원생 다운 검소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생활비까지 받습니다. 명문 대학은 대학원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대학 학부생을 자금 조달원으로 사용한다는 불만이 이제는 그다지 불만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뭐 그럴 수도 있지” 라는 관대한 기분까지 들게 됩니다. 학부 등록금을 인상해서 대학원생의 stipend 를 좀 인상해 주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합니다. 명문대학의 성의 없이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자신의 연구에는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학부 때는 숙제 질문할 기회도 없었던 교수님들이 대학원에 들어가 Research Assistant가 되면 매일 만나게 됩니다. 결국 명문대는 Research (연구)로 명성을 얻는 것이며 모든 교수의 평가는 다 Research 업적으로 측정되며 모든 대학의 구조도 이 Research를 지원해 주는 방향으로 기울어 있고 Research의 결과가 활발해지면 명문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학부생이 가장 덜 중요하고 가장 만만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대학 입학 정보 투어를 하다 보면 다들 한결 같이 학부생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 대해 누누이 강조하는데 대학원에 가 보면 이것이 다 찔리는 데가 있어서 저려오는 발로 서서 변명을 뻔지르르하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명문 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커리어의 첫 직장에 들어갈 때 도움이 가장 많이 됩니다. 무엇을 잘 배워와서라기 보다 대학에서 검증을 해준 지적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다. 명문 대학원 출신 역시 여기에서 같은 이유로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 합니다. 한데 그 것의 의미가 생각처럼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전에는 직장에서 직원들 학비를 대 주었는데 이제는 그런 제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학생들이 직장에 들어갈 때면 거의 사라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역시 전에는 학력에 따라 정해지는 연봉의 폭이 있었는데 모든 제도가 점점 결과 위주 실력 위주로 바뀌어 가면서 학력이 있다고 올려주는 연봉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학력이 높아지면 지식도 늘고 그만큼 생산량도 늘 것이니 자연적으로 진급이 되어 연봉 인상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가 논리입니다. “만약 더 높은 생산성이나 창조력을 보이지 못하면 학위 다 헛것이었으니 회사가 연봉을 인상해줄 근거가 없다”가 암시된 메세지 입니다.
대학 다니면서 만난 친구와의 친분은 중요하고 장래에 network 이 되어 굳게 닫힌 문들도 열게 됩니다. 하지만 서로 본적도 없는 사이에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 즉 선후배라는 것 하나로만은 열릴 문이 별로 없습니다. 친구가 부서에서 일하고 있어 인터뷰 기회를 얻는 경우는 많이 보았어도 (저 자신도 여러 번 주선하고 주선을 받았고) 선배가 있기 때문에 고용이 된다는 경우는 못 보았습니다. 다들 유능한 직원을 고용해 자신의 부서를 돋보이려 하지 평범한 후배를 고용해 평범한 부서로 만드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어에 “낮은 학년생”(lower classman) 은 있어도 “후배” 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에서 그 개념이 약하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적격자가 아닌데도 후배를 고용하는 회사나 부서는 일할 곳이 못 됩니다. 불평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빨리 그리고 조용히 실력을 존중하는 회사나 부서로 옮겨야 합니다.
경력이 점점 쌓아져 가면서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해냈는가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해집니다. 결국 검증을 원하는 것이니까 일을 잘 할것이라는 확인을 위해서는 일을 잘 해왔다는 경력의 검증 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중에 회사를 대표하는 위치에 가게 되면 (예를 들어 회사 연구소 소장) 그 때는 대학 간판과 학위를 다 고려하여 명성 없는 대학 출신을 뽑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만 웬만한 위치에서는 실력을 보지 10년전에 졸업한 학교 이름 들추지 않습니다.
회사에 지원을 할 때도 첫 직장이 아니라면 이력서에 벌써 경력을 먼저 쓰고 저~ 뒤에가서 학력을 씁니다. 저도 첫 직장 때는 이력서에 쓸 말이 없어 학력, 논문의 주제, 논문 발표 기록등으로 주로 학력으로 채워야 했지만 나중에는 세페이지가 넘어 네페이지 되는 이력서를 두 페이지로 줄이느라 한 일도 별로 직결이 안 되면 과감하게 줄여야 했어서 학력은 간신히 학교와 학위만 쓸 자리만 남게 되었고 그나마도 가장 덜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가장 뒤로 밀었습니다.
대학은 4년이지만 석사 학위는 2년입니다. 모든 학위 중 석사 학위가 시간에 효과를 비교하면 가장 이익이 큰 투자입니다. 박사학위는 제대로 된 대학원에서 제대로 된 학위를 받으면 일이 너무 많고 시간이 너무 걸리고 (4년에서 10년) 박사학위를 소지한 일반 직장인으로 얻는 득은 투자에 비하면 빈약합니다. 단 교수나 연구소장등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 위치로 가려는 학생은 물론 박사학위를 받아야 하지요.
이렇듯 대학원이란 자신이 원하는 곳에 들어가면 가족 친지들 사이에서 명목이 설 뿐 아니라 이런 실질적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얻는 경험과 지식이 있고 그를 위한 시간 투자도 비교적 적고 금전 투자도 적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 학위와 마찬가지로 대학원 학위도 아무런 보장을 주지는 못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이번에 진학하는 대학에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앞으로 이런 전학이나 대학원 진학의 기회들이 있다
- 대학교 1학년 때 다시 백지에서 시작을 하는 기회라는 것을 알고 이번에는 처음부터 제대로 기록을 쌓아가야 한다
- 대학 과정은 획일적이지 않고 전공이나 코스나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엮을 방법이 많으니 학교 카탈로그를 보고 자신의 장래를 계획해야 한다.
- 대학원 석사 과정은 비교적 시간도 짧고 자신이 원하는 과목만 배우니 재미도 있고 운이 좋으면 등록금 면제는 물론 생활비 받으면서까지 공부하며 그 대학의 이름을 이력서에 올릴 수 있다. 지금 들어간 대학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그리고 전학이 되지 않으면 대학원을 다녀라.
- 명문대 졸업장이란 마라톤에서 약간 앞서 시작했다 뿐이다. 아무런 대학의 졸업장도 장래를 보장할 수는 없고 결국에는 어제의 내가 한 일이 내일의 나를 만드는 것이니 대학과 대학원에서 받아야 하는 교육은 지식뿐이 아나라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지식을 미래에 어떻게 찾아 습득하는가의 자세와 기술이다. 즉, 생선만 받지 말고 반드시 낚시대도 받아 오도록 해야 한다.
- 이제는 고등학생이 아니고 몸도 마음도 머리도 성숙한 성인이 되었으니 냉정하고 현명하게 대학생활을 잘 해내어 장래의 꿈을 마음껏 펼쳐 보기 바란다.
수학과 어린이 정신 성숙도
Written on May 25, 2005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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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TV에서 자연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집안에서 마른 옷을 입고 창밖을 내다볼 때만 비의 낭만을 느낄 수 있듯이 사자의 발톱이 안전하게 브라운관 안에 갇혀 있을 때 나는 야생의 멋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 프로그램을 열심히 본 덕분에 나는 숲, 바다, 산 등 황량한 야생을 보노라면 그 안에서 살아 남으려고 도망 다니는 동물들과 민첩하지 못해 산채로 잡아 먹히는 동물을 상상하게 됐다. 목숨을 살리기 위해 문자 그대로 필사적으로 달리는 모든 동물중에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갓난 애기 동물들이다.
인간 영아들은 자라난 후에야 (아마도 유아 열등 콤플렉스에 의해) “나는 달리려고 태어났다(I was born to run)”고 열창을 해 대지만 야생동물들은 아무 말 없이 생존을 위해 평생 달린다. 많은 야생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젖을 빨기도 전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달리는 것이다. 이것은 한번 생각해 볼만 하다. 채 무엇을 배울 시간이 있기도 전에 갓 태어난 사슴은 뉴턴의 역학의 법칙(중력, 가속, 속도, 거리), 입체시야 해석방법, 가족 식별, 육식동물 식별 그리고 생존하기 위해 달리는 방법을 안다. 이와 같이 먹이사슬의 사전배정 즉, 먹이사슬 도표 지도에서 “you are here!”라는 명확한 위치의 주제파악을 하고 태어나는 것은 무력한 인간의 유아에 비하면 놀랄 만한 지식이다.
사실 그 어느 동물보다 인간의 유아가 가장 준비 안 된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준비가 안 된 정도가 아니라 미완성된 상태로 태어난다. 완전히 제 기능을 다하는 두뇌는 너무 커서 출생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인간은 태어난 후에 밖에서 발달과정을 완성한다. 스위스 태생 심리학자 (마리아 몬테소리의 제자) 장 피아제(1896-1980)는 인간발달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데 관한 영향력 있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피아제는 아동발달 과정을 관찰하여 다음과 같이 4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를 소단계로 구분하였다.
1. 감각운동 단계 (0-2세)
2. 전 조작 단계 (2-7세)
3. 구체적 조작 단계 (7-11세)
4. 형식적 조작 단계 (11-15세)
전 조작 단계의 아동 (2-7세 아동의 대표적인 현상)은 물을 다른 용기에 부으면 수량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컵에 들어 있는 물을 (흘리지 않고) 접시에 부으면 물의 양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접시에 있는 물을 컵에 다시 부으면 물의 부피가 원 상태로 돌아왔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즉, “부피보존”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이 단계의 아동은 “질량보존”의 개념도 이해하지 못한다. 찰흙 두 덩어리를 놓고 한 덩어리를 늘리면 이 단계의 아동은 크게 늘린 덩어리에 찰흙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무겁다고 생각한다.
전 조작 단계의 아동에게 부피가 보존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 가르쳐야 한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물론 실험을 반복하여 부피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크기가 다른 용기에 물을 담으면 더 많아 보이기도 하고 적게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물의 부피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자녀를 두신 부모님께 한번 이 실험을 해보시라고 권고한다. 똑 같은 컵을 두개 사용하여 A에는 물을 더 많이 넣고 B에는 적게 넣는다. 아이에게 물어보면 물론 A에 물이 더 많다고 한다. 다음에는 A의 물을 넙적한 대접 C에다 따른다. 이때 물어보면 전 조작 단계의 아이는 B가 더 양이 많다고 대답한다. C에 있는 물을 다시 A로 따르면 A의 물이 더 많다고 한다.
지금 내 설명을 듣고 실험을 했더라도 그 결과를 보면 좀 충격적이다. “이렇게 당연한 것을 모르다니???”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이런 간단한 사실도 관찰하지 못하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르쳐야 하는가? 유치원을 바꾸어야 하는가? 여름방학 영아 부피보존 개념 주입 특별교실에 등록을 해야 하는가?
C의 물이 B보다 많다고 말하도록 가르칠 수가 있다. 이 실험을 반복하면서 대답이 맞으면 잘 했다고 칭찬하고 틀리면 인상쓰고를 반복하면 마침내 C의 물이 더 맚다고 대답을 한다. 정의의 승리이고 과학의 승리이자 교육의 놀라운 효과라고 감격할만하다. 참 신통하고 역시 내 아들이라고 자랑할만하다. 그 나이또래의 아이들은 깨닫지 못하는 어려운 개념인데 일찍 통달했고 이런 식으로 나가면 10살때면 대학도 졸업하지 않을까도 싶다.
한데 이 교육방법을 사용하면 물의 부피보존 정도가 아니라 더 놀라운 교육효과도 낼 수 있다. 예를 들면 “1 + 1 = 3″이라고 말하도록 가르칠 수도 있고 해는 서쪽에서 뜬다고 가르칠 수도 있다. 즉 무슨 말이든 따라하는 앵무새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배우는 것은 지식이 아닌 것이 이 새로 배운 지식으로 다른 아무것도 터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일단 구체적 조작 단계(7-11세)에 들어가면 어떠한 가르침도 없이 갑자기 “부피보존”의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전에는 이해를 못하던 부피보존도 이제는 오히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왜 그런 바보스러운 질문을 해 오는 자체를 의아해 한다. 신기한 것이 이 단계가 가르친다고 빨리 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교육받지 못한 무지한아동이라도 이 나이가 되면 저절로 부피 보존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성숙한 것은 아니다. 구체적 조작 단계의 아동의 이해도는 컵을 물 분량을 구분할 수 있어도 아직 보고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물체를 이해하는데 제한되어 있다. 수학적 개념으로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누기 등을 이해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이 나이의 아동은 허수나 분수지수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이 나이의 많은 아동들은 x를 변수로 사용하는 개념을 난해하게 생각할 것이다.
아동들은 형식적 조작 단계(11-15세)에서야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생긴다. 이 단계에서는 힘의 장 (force field) 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물체, 무한대와 같이 경험할 수 없는 양, 공정성이라는 무형의 개념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단계에서 학생이 추상능력과 논리연산능력을 갖추어야 무한급수, 확률, 미적분 등을 학습할 수 있게 된다. 이 형식적 조직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 수학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구체적 조작 단계에서 형식적 조작 단계로 발전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5, 6학년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학생 중 아무리 노력해도 Algebra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그 이유는 약한 산수기반과 무관심등을 포함하여 그 밖에도 많겠지만 종종 그 원인은 발달단계에 있다. 5, 6학년 학생들은 구체적 조작 단계에서 형식적 조작 단계로 들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이다. 이 과도기에는 방정식을 도저히 이해 못하던 학생이 몇 개월 만에 갑자기 영리한 학생이 될 수도 있다.
고전하던 학생이 갑자기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나는 안도감을 느낄 뿐 아니라 가슴 뿌듯하게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몇 달 전에 눈물 겨운 노력을 했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저절로 이해를 할 것이었으면 들들 볶지 말고 그 학생이 자연스럽게 형식적 조작 단계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았을까? 어차피 오후에 다 녹을 눈이라면 아침 내내 허리를 삐어가며 치워야 하는가?
학생들의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않고 4학년과 같은 어린 학생들에게 덮어놓고 Algebra을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다. Algebra을 학습하고, 방정식을 풀고 정답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린 학생들이 진정으로 수학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문제 푸는 방법을 보고 흉내내면서 “물의 부피는 변하지 않는다”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식으로 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응용문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앵무새적인 요소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수업과 학생의 발전의 인과관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해서 학생들이 다음 단계로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자연적으로 터득할 것을 내가 빨리 터득하게 한다고 피곤하게만 만든 것인가? 만약 “부피보존”의 개념이 교육 없이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수학적 추상능력도 Algebra도 Geometry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교육이 단계진행을 촉진하는가? 아니면 학생이 그 단계에 이를 때까지 교육이 기다려야 하는가?
일단 묻기 시작한 질문은 한없이 깊이 들어가기만 한다. 교육이란 대체 무엇인가? 어린이들이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게 밀어주는 방법인가? 아니면 현재 발달단계에서 그들이 제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인가? 너무 이른 나이에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벼가 빨리 영글으라고 모를 뽑아놓는 짓인가? 아니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도록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인가?
나는 이 질문들의 정답을 모른다. 단지 몇몇 학생들은 특정 나이에 일찍이 Algebra을 배워 종종 벽에 부딪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무슨 요술처럼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알뿐이다. 내가 고등학생만 가르치고 어린 학생 가르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 이 과도기의 문제를 피하고 싶은 잠재의식인지도 모르겠다.
이 발전 단계적 과도기의 학생들의 성적이 갑자기 향상되면 물론 나는 전적으로 그것이 나의 공적으로 돌리고 싶지만 사실 그의 갑작스러운 계발이 나의 가르침의 영향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 자신에게 확실히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내가 학생의 지적성장을 더디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사진과 함께 “학생의 발전을 더디게 하지 않게 한 은사”라는 제목의 일면 뉴스 톱기사를 상상해본다.
이런 우여곡절과 허무한 성공이 5, 6학년 학생들에게 Algebra을 가르치는 좌절과 보람이다. 만약 독자 여러분 중 4, 5학년 정도된 자녀가 산수를 잘 해오다가 Algebra에서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발전 단계의 과도기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기다려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산수기초만 탄탄하다면 때가 되면 형식적 조작 단계로 이르게 되어 갑자기 개념을 모두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짧으면 2,3개월 걸릴 수도 있으며 그 기다리는 기간 동안에는 산수, 주산 배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ISEF에서 학생들이 노벨상 수상자에게 묻는 질문들
Written on May 16, 2009
By James H. Choi
http://Korean.SabioAcademy.com
원문출처
ISEF의 화요일의 행사 중 하나는 노벨상 수상자들로 구성된 panel에게 학생과 심사원들이 질문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올 해는 노벨상 수상자 일곱 명 Herschel Medal수상자 한 명 총 여덟 명이 여러 가지 질문에 답을 했습니다.

2009 ISEF에서 노벨상 수상자들이 학생의 질문을 받고 있는 장면
Photo by James H. Choi
학생의 질문은 “어렸을 때 했던 활동이 과학자로 성공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느냐?”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하십니까?” 질문이 있었고 답은 가지각색이었습니다. 또 한 예는 “Eagle Scout를 한 것이 과학자로 성공하는데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였는데 세 명이 좋은 영향이었다고 답을 해서 그 쪽으로 의견이 기우는가 싶었는데 다음 답은 노벨상 수상자 답게 “그 질문의 저변에는 어떤 활동을 하면 과학자로 성공하는가를 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생각하는데 Eagle Scout한 사람 중에도 실패한 사람이 많고 Eagle Scout 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이 많으니 인과 관계를 만들려는 것을 무리다”라고 침을 놓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학부모님들이 늘 하시는 질문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활동을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나요?” 하시며 마술의 열쇠를 찾으시는데 이 ISEF에 출전한 학생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미 이 ISEF에 출전한 학생들은 대학입학 뿐 아니라 인생에서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고 있는 학생들인데도 노벨상 수상자의 “비법”을 밝히려 하고 있는 것이지요.
노벨 수상자에게 어떻게 하면 과학자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가를 알고 싶어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있던 학생들은 바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이미 서 있으면서 더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감탄한 것은 학생들이 카메라가 집중 되고 spot light를 받으며 긴장이 될 상태인데도 “like”라는 소리 섞지 않고 당당하고 조리 있게 질문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들 이 수준으로 과학을 지도 받으면서 발표하는 것도 지도 받았을 것이고 “like” 소리를 하는 것이 얼마나 멍청해 보이는지도 지도 받았지 않았나 짐작해 봅니다. 제 학생들 “like”소리 하지 말고 의견을 피력하라고 하면 “영어 선생님도 like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데…”라고 말을 흐리는데 거기에 내포된 의미는 “네가 외국출생 수학 선생주제에 무슨 native speaker인 나의 영어 표현을 왈가왈가 하느냐” 입니다. “네 영어 선생님이 제대로 영어 표현을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 선생님을 존중해 주면서 존중하는 선생님의 발 버릇만은 따르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제 학생들은 이렇게 간단 명료하게 표현하는 법을 솔선수범 못하는 선생님들 속에서 줄기차게 당당하게 꾸준하게 like 소리를 섞어가며 멍청하게 발표를 하고 있어 속이 탑니다. 이렇게 버릇이 되어있으니 나중에 인터뷰 할 때도 과학경시대회 심사 때도 긴장을 할 수록 줄기차게 like 소리를 반복하여 점수를 깎여나갈 전망인데 이 이상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심사를 한 학생들은 제 학생들과 같은 나이인데도 like 남발 없이 조리있게 설명을 하여 더욱 돋보였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학생들 뿐 아니라 심사위원들도 노벨 수상자들에게 질문을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다 뻔한 질문에 (공부를 못하는 학생을 위한 배려는 많은데 잘 하는 학생은 왜 방치하는가?) 뻔한 답들 (학교에 자원 봉사하여 학교의 운영에 더 참가하라)로 일괄되어 전해 드릴만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