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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학을 배워야 하냐고 묻는다면

By James H. Choi
http://Korean.SabioAcade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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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가르치다 보면 “왜 수학을 배우는가?”라는 질문을 접하게 된다. 이 질문은 주로 본인/타인에게 “수학을 배워야 할 동기”를 찾기/찾아주기 위해 하는 질문일 것이다.
한데 나는 이 “유용”이나 “혜택”을 나열함으로 수학에 흥미를 가지게 하는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날씬해지는 데서 오는 혜택”을 알고 나서 자세가 바뀌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목숨이 직결된 혜택을 잘 알면서도 비만과 관계된 질병 환자는 늘어가기만 하니 “수학의 혜택” 따위야 기별이라도 가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수학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수학 교사, 과학자들이 “수학이 얼마나 실용적이며 필수적인 학문인지” 예를 들어 열심히 설명하지만 학생의 반응은 항상 시큰둥~ 하다. 사실 내가 아는 모든 수학에 뛰어난 학생은 한결같이 “재미있어서” 또는 “뻐기고 싶어서” 수학을 하지, 아무도 “일상생활에 유용해서”나 “장래를 위해서” 공부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즉, 이런 “왜 수학을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자세를 바꾼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우선 그 “수학의 중요성이란 설명”이란 어떤 내용일까? 크게 “연산의 유용”과 “수학의 힘”으로 나누어진다. 연산의 경우는 “식당에서 팁을 계산할 때” 등 연산이 필요한 경우를 들지만 이 모두 한결같이 계산기가 무료로 정확히 그리고 간단히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 “수학의 힘”의 경우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예가 있다. “체스판의 첫 사각형에 1센트를 놓고 그다음 사각형에 2센트를 놓고, 그다음에 4센트, 8센트 식으로 두 배의 돈을 놓으면 마지막 64번째 사각형에는 얼마를 놓아야 하나?” 아니면 “종이를 반으로 접기를 몇 번 반복하면 그 접힌 종이의 두께가 지구에서 달까지 갈까?” 같은 식으로 계산기도 소용없고 직접 실험도 할 수 없고 오직 수학적 추리력을 사용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가 등장한다. (첫 문제의 답은 약 9경 2천조 달러. 두 번째 문제의 답은 약 42번.) 들으면 신기하기는 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내게 일어날 일이 아닌지라 재미있는 이야기 들은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유명한 문제는 인터넷 검색하면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수학을 배워야 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나는 “수학이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PayScale.com 같은 사이트에서 각 전공별 평균 연봉을 보면 학사학위 소유자의 초봉을 기준으로 석유공학 전공자는 약 $111,462, 공학 전공 졸업자의 평균 초봉은 $78,731로 나타난다. 첫 비이공계 전공의 등장은 간호학으로, 평균 연봉은 약 $56,000이다. 반면, 비즈니스 전공은 평균 연봉 $43,000, 리버럴 아츠 전공자는 $37,000 수준이다. 또한, 인문학 전공자의 평균 연봉은 $47,000에서 $114,000 사이로 다양하다. 그나마 이 통계는 고용에 성공한 사람에 국한하는 수치이고, 현실적으로는 그보다 더 낮다. 왜냐하면 낮은 연봉의 전공일수록 무직일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대학원 과정도 마찬가지다. 수학과 깊이 관련된 전공은 대부분 학비 면제에 생활비까지 받지만, 인문·사회 계열 전공은 대부분 자비로 다녀야 하니 부모님 은퇴금까지 고갈시키기 쉽다.
결국 수학을 포기하는 순간 평생 수입 기대치가 반 이하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단순히 “돈 때문에 수학을 해라”라는 말도 매력적이지 않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 참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수학을 재미있게 접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수학을 게임처럼 접근하라. 체스판 문제나 종이 접기 문제도 단순히 답을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고민하고 해결해보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둘째, 수학을 활용하는 분야를 탐색하라. 요즘은 코딩, 데이터 분석, AI 같은 분야가 뜨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수학과 연결되어 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와 연결해서 수학을 바라보면 훨씬 흥미로워질 것이다. 셋째, 경쟁을 활용하라. 수학이 뛰어난 학생들은 대부분 “재미있어서” 혹은 “뻐기고 싶어서” 한다고 했는데, 이는 결국 경쟁에서 오는 성취감 때문이다. 수학 경시대회나 퍼즐 풀이 같은 활동을 통해 성취감을 경험하면 자연스럽게 흥미가 생긴다.
그러니 “수학을 왜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설득력 없는 일상생활의 유용성을 알릴 것이 아니라 “수학을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고, 재미있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답변을 해주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효과적이라고 본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컴퓨터 실력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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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이 글은 2014년 시카고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이다. 지금 2025년에는 ChatGPT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학생이 제출할 수 있는 결과물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컴퓨터 원리에 대한 이해의 깊이는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인공지능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면서 그 이해도가 더욱 낮아졌을 가능성도 있다.
오늘날 성장하는 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린다. 이들은 단순히 컴퓨터가 있는 환경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컴퓨터와 함께 성장한 세대다. 특히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이 보편화된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도 전에, 심지어 걷기 전에 이미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컴퓨터가 키운 세대” 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한데 이 “디지털 세대”는 과연 디지털 컴퓨터에 대해 잘 알까?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먼저 나 자신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했고, 안테나를 조정하며 흑백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시청했으며, 카세트테이프에 음악을 녹음하고, 연필로 글을 쓰며, 주판으로 계산을 하던 세대다. 또한, 1970년대 전자제품 수입이 금지되었던 브라질에서 생활하며 계산자를 이용해 물리 문제를 푸는 방법도 배웠다. 이러한 배경을 가진 내가 감히 디지털 세대의 컴퓨터 활용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는 방법을 직접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컴퓨터를 이용한 의학 영상 처리, 정수론 연구 등 첨단 학문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디지털 세대의 컴퓨터 활용 방식과 문제 해결 능력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디지털 세대의 컴퓨터 실력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이들은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룬다고 생각되지만, 실상은 매우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활용 능력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를 여행에 비유하자면, 이들은 인솔자의 안내를 받으며 유명 관광지를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패키지 여행객과 같다. 방문한 장소도 많고 본 것도 많지만, 정작 그 지역의 언어, 문화, 역사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고, 오직 쇼핑센터의 위치만 정확히 기억하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연구”를 하라고 하면 디지털 세대의 대다수는 기존에 누군가 작성한 자료를 검색하여 그대로 베껴 쓰려는 경향이 강하다. 패키지여행은 따라갈 수 있지만, 스스로 여행 계획을 세우고 길을 찾는 것은 어려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거 세대는 도서관에서 카드를 뒤지며 책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이를 종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훈련이 이루어졌다. 반면, 오늘날은 방대한 정보가 손쉽게 검색되기 때문에, 원하는 주제를 이미 정리해 놓은 문서를 그대로 찾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설령 표절을 하더라도 직접 손으로 베껴 쓰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학습이 이루어졌지만, 디지털 세대는 복사-붙여넣기만으로 과제를 완성하기 때문에, 자신이 제출한 리포트의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더욱이, 이들이 의존하는 검색조차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학생이 드물다.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워드 프로세서조차 타자기처럼 사용하며, 자동 목록 작성이나 방정식 입력 기능조차 익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수학 공식을 제출할 때도 마치 타자기로 찍은 듯 조잡한 형식으로 작성하는 사례가 흔하다.
디지털 세대는 단연 컴퓨터를 접하는 시간이 길지만 그것이 지식이나 활용 능력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학부모 세대가 전화를 한 없이 붙잡고 있었지만 이 시간이 전화에 대한 지식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과 매한가지이다. 자제분의 컴퓨터 사용 능력을 아시려면 “국가의 위도와 GDP의 관련에 대한 연구”를 하라고 하면 과연 “학생이 직접 각 나라의 위도를 찾고 각 나라의 GDP를 찾아 그래프를 만들고 연관성을 발견해 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검색해서 누가 해 놓은 결과를 베끼려고 하면 전형적인 디지털 세대의 전형적이 무능한 문제 접근 방식이고 우려를 해야 할 자세이다.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자동으로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디지털 세대도 단순히 컴퓨터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해서 그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교육을 받지 않으면, 결국 컴퓨터는 게임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현재는 무료 온라인 컴퓨터 강의도 풍부하다. 자녀가 컴퓨터를 단순한 오락/소비 도구가 아니라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도할 것을 권장한다.
비싼 무료 Part 1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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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또는 “공짜”라는 개념은 현실을 왜곡하는 힘이 있다. 결국, 누군가는 어디선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진리를 피할 수 없는데, 인위적으로 무료로 만들면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나고, 그 차액을 누군가가 부담하거나 손해를 보게 된다. 특히, 무료 혜택을 받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사람보다 힘이 있는 경우, 이러한 왜곡은 그대로 정착되고 만다.
대표적인 예가 “무료 대학” 제도다. 한국에서는 한때 “등록금 반값” 운동이 있었는데, 브라질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주립대학(브라질의 최고 명문대학은 대부분 주립 또는 국립대학이다)이 법적으로 무료 교육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즉, 가정 형편에 관계없이 학생이 공부만 잘하면 최고의 대학을 무료로 다닐 수 있는 제도가 수십 년째 운영되고 있다. 결과는 어떨까?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이 무료 대학을 독차지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비싼 사립대학을 다니거나 아예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세금을 내어 부유층 자녀들의 대학 교육을 지원해 주고, 이들이 사회적 우위를 세습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이유는 바로 입학 시험 때문이다. 남미 최고 대학으로 꼽히는 상파울루 대학교(Universidade de São Paulo, USP)는 입학 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데, 이 시험에서 합격하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그리고 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고급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곧 비싼 사립 고등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특히 상파울루 대학교에 많은 학생을 입학시키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입 시험이 다가오면 대형 학원들이 우리 학교를 찾아와 무료 복습 강좌 수강증을 나눠주며 우리 이름을 사 가기도 했다. (나도 친구에게 주기 위해 내 이름을 팔았다.) 이 학원들은 이후 신문과 광고에 우리의 이름을 **“합격자 리스트”**로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자신들의 합격률이 높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문제는, 돈이 없어 사립 고등학교에 다닐 수 없던 학생들이 이러한 광고에 속아 고액을 지불하고 **“족집게 단기 속성 코스”**를 수강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보면, **“São Paulo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도 부모가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사립학교를 보낸다”**는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경우가 드물었고, 실제로 그렇게 한 사례는 나와 한국인 친구 집안뿐이었다. 브라질 친구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가정 출신이었다.
브라질 국민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고 비판하는 이 불합리한 무료 대학 교육 제도가 수십 년째 유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투표율이 낮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는 거의 “무료”인 미국 공립 고등학교 제도가 마치 모든 학생이 가정 소득과 관계없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학군이 지역 부동산 가격을 왜곡하여 결국 부동산을 살 여력이 있는 사람만이 우수한 공립 교육을 누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2008년 이전까지는 “우수한 무료 교육”과 함께 “부동산 투자 이익”까지 얻을 수 있는 특권 패키지가 되기도 했다. 고급 주택이 많은 지역에 위치한 New Trier 같은 고등학교는 미국 교육의 불평등을 비판한 책 Savage Inequalities에서 **“특권을 누리는 고등학교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또한, 샴버그 지역의 211학군에서는 약 10년 전 학교 운영비를 늘리기 위해 부동산세 인상 투표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주민들에게 배포된 안내문에는 **“학교가 AP 수업 등을 제공하지 못해 수준이 낮아지면, 당신의 집값도 하락합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공지라기보다 사실상 협박과도 같았고, 결국 주민들은 부동산세 인상안을 통과시켰다.
시험을 치러 학생을 선발하는 공립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이들 학교의 합격자 명단은 거의 예외 없이 입시 준비에 많은 돈을 투자한 학생들이 장악한다. 결국, 미국에서도 우수한 공립 교육을 받으려면 부유한 가정 출신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왜곡은 교육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기 가수의 공연에서는 티켓 가격과 관계없이 좌석의 실질적 가치가 정해진다. 아무리 무료 공연이라도 암시장이 형성되면서 티켓 가격이 원래의 시장 가격으로 치솟는다. 즉, 무료든 유료든 최종적으로 관객이 지불하는 비용은 비슷하며, 단지 돈이 흘러가는 경로가 달라질 뿐이다.
이는 종교 행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베네딕토 교황이 뉴욕을 방문했을 때, 야구장에서 열리는 미사 입장권을 뉴욕 내 가톨릭 교회 신도들에게만 무료로 배부했다. 그러나 결국 이 표들은 암시장에서 200달러 선에 거래되었다.
현재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대학 온라인 강의, 위키백과(Wikipedia), 무료 프로그래밍 언어와 같은 다양한 무료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시장을 왜곡하는 힘을 가지며, 누군가는 그 혜택을 보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그 여파를 가장 직접적으로 맞을 사람들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이려는 우리의 자녀 세대다.
이 문제에 대한 더 깊은 분석은 Part 2에서 다루겠다.
다음글: 비싼 무료 Part 2
인터넷 세대의 학생과 인터넷 세대 부모 모임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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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말하는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어른의 한탄은 수 천년 전 기록된 바빌로니아의 쐬기 문자에도 등장한다고 하니 이는 영원한 세대차이의 문제이지 “요즘”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 나라에서 한 언어를 사용하며 대대로 살아 오는 가정, 즉 확고한 정체성에 튼튼한 뿌리로 무장한 가정에서도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세대 차이의 갈등이 있다. 이민가정에는 그 위에 언어 차이, 문화 차이까지 겹치게 된다. 그것만 해도 인간 사이에 견고한 벽을 형성 시키는데 요즘같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서는 가치관 차이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쯤 되면 앞이 캄캄해질 만 한데 현실은 더 어렵다. 이번 세대의 학부모의 현실에는 더 거대한 존재가 있으니 이는 컴퓨터/인터넷이다.
이 컴퓨터/인터넷으로 인해 발생하는 교육/양육의 문제는 동서고금 전례가 전혀 없다는 큰 제약이 있다. 수 천 년을 이어온 재래식 교육 방법도 아직까지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라는 서로 상반되는 이론과 의견이 난무하지만 그래도 주장하는 양측 다 자신의 방법으로 성공/실패한 사례를 열거할 수 있고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관찰에 반영하여 나름대로 정리하고 나의 사정에 맞는 근거 있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하지만 초중고생의 교육에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것은 인류역사 초유의 현상이라 성공 실패의 자료가 없고 따라서 근거에 의한 이론을 제시할 수가 없다. 교사, 학부모, 전문가, 일반인 모두 다 미루어 짐작하고 있을 뿐이고 지금 학생은 본의 아니게 거대한 교육 실험의 모르모트가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올 해부터 New Trier 고등학교는 교과서를 Tablet으로 대체했다. 학생들이 무거운 책 여러 권 들고 다니는 대신에 가벼운 tablet 하나로 대체하는 것이 그럴 듯 하지만 이는 “미국 학생의 성적이 저조한 원인은 책의 무게다”라는 연구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다. 책을 구입하는 비용을 절감했다고 하는데 우선 교과서의 비용이 tablet의 가격보다 교육의 질을 저하 시킬 정도로 부담스러웠는지 조사한 결과를 본 적이 없다. (교과서는 10년도 물려가며 사용하지만 tablet은 2년 후에 개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초중고생의 몇 프로가 tablet 을 사용하며 게임의 유혹을 이기고 학업에 집중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자료도 본 적이 없다. 내가 테크놀로지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있어서가 이렇게 의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교육 테크놀로지 개발과 응용에 첨단을 달리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내 눈에는 어설프게 비싼 장비만 도입하여 뭔가 “정보 시대의 교육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모습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컴퓨터/인터넷 정책은 우리가 임의로 바꿀 수 없으니 운명에 맡긴다고 하자. 하지만 우리에게 결정권이 있는 집에서는 아이들이 어떻게 언제 어떤 식으로 컴퓨터/인터넷을 사용하도록 길러야 맞는 것일까? 통계적으로 맞는 답이 밝혀지는 것은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야 나올 것이기 때문에 기다릴 여유가 없다. 오늘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학부모님이 오늘 직감으로, 시행착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현재 학생의 학부모님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인터넷/컴퓨터 사용에 선을 긋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인터넷을 통해 가르치는 학생을 webcam을 통해 보면 자신의 방에서 수업하는 학생도 있지만 부엌에서 수업 하는 학생도 있고 거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이렇게 학부모님이 볼 수 있는 곳에서만 컴퓨터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기는 한데 그 외에 다른 방법도 있을까? 그리고 학생이 컴퓨터/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은 어떻게 정해야 하나? 현재 의견은 많지만 아무도 정답을 모른다.
정보의 중요성, 게임 중독의 심각함 등을 고려하면 이 현명한 인터넷 사용 제재가 학생의 성패를 가르는데 틀림없이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시카고 지역에는 “좋은 부모 모임” 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 학부모님에게 가이드가 되고 있지만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인터넷 세대 부모 모임” 이다. 아직 아무도 이 주제를 가르칠 자격이 없으니 우선은 학부모님끼리 만나 서로의 지혜를 나누는 장을 만드는 것이 첫 단계라고 생각된다. 어차피 시행 착오로 진실에 접근해야 하니 여러 사람의 착오를 듣고 배워 내가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만해도 모든 참가자에게 큰 이득이 되리라 생각된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우선 이 글의 아래 댓글로 제안을 해 주세요.)
부모가 어떻게 하면? 2: 특징이 없는 아이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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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올해는 전례없이 입학 경쟁이 치열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한국학생들은 특징이 없어서 불리하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대체 어떻게 아이를 기르면 특징이 없는 아이가 되는 것인가?
답:
특징이 없다는 것은 남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남과 같아지기 위해서는 남하는 대로 따라 하면 된다.
우선 학부모부터 특징이 없으면 그 자녀도 특징이 없기 쉽다. 학부모가 학생 앞에 보이는 모습, 즉 취미, 기호, 종교, 양육법 등이 학생의 친구 부모와 어떻게 다른가? 하다못해 가족 여행을 해도 남들이 갔다는 곳을 일부러 골라 가는가? 영화는 남들이 보았다는 영화를 골라서 보는가? 책도 다른 사람이 읽고 있다는 (=best seller) 점을 선택의 지침으로 삼는가? TV 드라마도 남들이 보는 것을 선택하는가? 유행하는 옷, 핸드백, 자동차를 선호하는가? 한가지라도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인생의 목적이 어느쪽에 더 가까운가?:
- 남처럼 되는 것
- 남달리 되는 것
태어나서부터 “남 따라하기에 힘을 쓰는” 부모의 모습을 보아온 자녀는 남따라 가는 자세를 배울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학부모님 자신뿐 아니라 자녀를 위해서도 어렸을 때부터 특별 활동 등 모든 선택을 주위 사람 다들 하는 것을 선택하면 확실히 특징없는 학생으로 성장하게 된다. 즉 항상 “무난한” 선택을 하면 “무난한” 학생이 탄생한다.
그리고 일단 첫 단추를 끼우고 나면 아이가 자라나며 새로운 점을 깨닫게 되도 “오래 해 왔기 때문에” 바꾸지 못하고 계속하게 된다. 특징없는 아이는 7학년 쯤이면 완성되어 그 후로는 독특해질 위험이 없는 셈이다.
학생에게 “독특한 너만의 일을 하라”라고 조언을 해 주면, 학생은 가만히 듣고는 곰곰히 생각하다 “누구를 따라하면 독특해지죠?”라고 반문을 할 정도로 남을 따라 하지 않는다는 것에대한 개념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이 전 문장을 읽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으면 (즉 농담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으면) 독자분도 “독특해진다”라는 개념을 모르는 분이기 쉽다.
독특해진다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은 일다. Fashion의 리더가 된다고 생각해보자. 남들이 입는 옷보다 더 비싼 것으로 골라 입어서는 리더가 되지 못한다. 아무도 입지 않는 옷을 입고 나서야 하는데 그럴 위인은 드물다. 자제분이 정말 독특한 활동을 하는 경우에 학부모님의 반응은 절대로 “대견”이 아니고 “불안”이다. “저렇게 과학 연구 하고 있어도 되나?”하고 불안해 하다가 마침내 결단을 내려 “그거하지 말고 오케스트라 해!”라고 평범하게 만드는 결단을 내리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한국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서로 동화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한가지 브랜드가 유행하면 다들 입어야 하고 못 입으면 친구 사이에서 따돌림까지 당한다고 한다. 그런 경향이 학부모님들의 자녀 양육에까지 영향을 얼마나 끼칠지 궁금하다.
하지만 “오지에 가서 봉사활동하면 된다” 라고 말이 돌면 우르르 몰려가니 대학 입학 사정관의 눈에는 이런 유행의 추종이 보일 것이고 “독창적인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에서는 이런 몰려 다니는 레밍을 자동으로 피할 것이라 짐작한다.
한국계 학생 대학 지원서는 다 우수하지만 다 똑같은 붕어빵을 찍어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더 잘 찍어난 붕어빵이 되기 위해 몸부림 칠 것이 아니라 남들은 한군데 몰려 지지고 볶으라고 하고 나 혼자만 용이 되는 것이 더 편하고 더 효과가 크다.
하지만 용이 되는데 한가지 장애물이 있으니 이것은 “남과 다르면 불안한” 한국 학부모님의 심리다. 불안을 극복하고 “오래동안 해 온” 붕어빵 활동을 중단할 용기가 있는가? 대부분 없다. 그냥 붕어빵을 더 잘 찍어내서 승부를 보려 한다.
어쩌면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무의식중에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살다 원하는 대학에 합격 하는 것” 보다 “남처럼 살다 남처럼 불합격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인생이라고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생각하면 많은 학부모님의 선택이 이해가 가고 결과도 안타까울 것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