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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서투른 선생님이 수학을 가르칠 수 있나?
Written on July 10, 2009
By James H. Choi
http://Korean.SabioAcade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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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영어가 서툴러도 영어로 수학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답:
있다. 하지만 대안이 없을 때만 그런 선생님을 고용해야 한다.
내 자신이 한 좋은 예다. 나의 영어는 이미 유창해 졌지만 아버지 미국주재 파견을 따라 온 한 일본인 학생을 내가 가르치게 된 적이 있다. 이 학생은 미국에 온지 몇 달 되지 않아 영어를 거의 못했다. 나는 친구의 소개를 받아 가르치러 가면서도 설마 예상을 못했는데 결국 일본어로 수학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르쳤다. 내 일본어는 들으면 유창한 것 같지만 수학 용어는 전혀 몰랐고 어휘의 분포도 일정치 않아 어려운 표현을 잘 아는 듯 하면서도 (사자성어 같은 한자 들어간 표현은 한국어과 같은 사용법의 경우가 많아 넘겨 짚어서 맞춘다) 간단한 말을 모르는 경우도 많아 나는, 일본인이 대화를 하면서도 대체 내가 어디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즉 피하고 싶은 대화 상대이다.
학생은 내 제 2 외국어도 아닌 제 4 외국어로 하는 (한국어, 영어, 포르투갈어, 일어 순서) 수학 설명을 이해를 잘 했다. 나는 항상 표현이 모자라 쉬운 단어도 돌려 설명을 해야 했지만 싫은 표정 하지 않고 열심히 이해 하더니 심지어는 “나 미국에 살면서 내 영어가 선생님의 일본어 수준까지만 가면 참 좋겠다”라는 소리까지 했다고 학부모님이 전해 주셨다.
이 학생은 공부 외에도 나를 좋아하고 따르기까지 하여 전기 기타도 가르쳐 주니 학교 수업에 말도 못하고 학교 가기 싫어하며 비디오 게임만 하며 현실을 도피하던 자세가 변해 급기야 학교에서 유명한 록 밴드의 리드까지 되는 위치까지 갔고 수학을 선두주자로 시작한 A 가 나오는 성적은 내가 어느날 “록 기타리스트가 성적표까지 All A 가 되면 폼 나는 것이다(かっこいいよ)” 라고 귀뜸을 해 주었더니 그 말을 그대로 믿어서인지 All A가 나오기 시작 했다.
그 학부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미국에 몇 년만 다녀가는 일본인 주재원의 자녀들 중에 방황하고 탈선하는 경우가 많아 중도 귀국을 해야 하는 경우가 흔한데 내가 가르친 학생의 경우는 공부에 우등생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 인기까지 드높은 학생이 되어 졸업하고 귀국을 한 아주 드문 성공 케이스라고 한다. 그 학부모님은 다 쵸이센세이의 덕분이라고 일본인 특유의 과장된 감사를 하시는데 실은 내가 엄청난 양의 일본어를 배웠기 때문에 내가 감사를 할 일이다. 지금도 어디에서 일본어로 Algebra를 설명하라고 하면 두렵지 않다 날씨 설명보다는 수학 설명이 내게 훨씬 더 익숙한 분야가 되었다. (단 그 학생이 오오사카 출신이라 일본인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내 일본어 액센트에 kansai ben이섞여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런지는 私も知らん)
이렇게 제4언어로도 성공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수학은 물론 제2언어로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서투른 일본어로 이 학생을 성공적으로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 이 학생과 학부모가 나를 전적으로 믿고 존중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학부모님이 눈이 온 날은 내가 가르치는 동안 내 차에 쌓인 눈을 치워 주셨고 가르치는데 방해가 될 정도로 가지 가지 간식을 내 오셨고 매번 내가 떠날 때면 온가족이 나와 내 차가 코너를 돌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셨다. 한국학생 포함 다른 나라 학생을 가르치면서 내가 이렇게 칙사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만약 삐딱한 자세의 학생이었거나 적대적인 학부모였거나 장난 심한 그룹이었으면 서투른 언어로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아마 내 서투른 일본어를 흉내내며 조롱하는 학생들에게 밀려 나고 말았을지 모른다.
Native Speaker도 난해한 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아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소리를 사람도 있고 서투른 언어구사력으로도 상대방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파악을 하여 궁금한 점을 정확히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다. 관건은 언어 구사력이나 어휘가 아니라 조리 있고 논리적인 생각과 설명능력이다. 특히 수학과 물리는 논리가 생명이기 때문에 선생이 언어가 서투르더라도 학생이 “아하!”소리가 나오게 하면 성공적인 선생이고 “ok” 소리가 나오게 하면 실패다.
한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내가 운영하는 학원에서는 나는 가능하면 영어에 서투른 수학 선생님을 고용하지 않는다. 영어 발음도 나를 기준으로 하여 나보다 액센트가 심하면 고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유는? 절충하지 않아도 된다면 절충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영어 잘 하는 선생과 수학 잘하는 선생중에 하나를 양자택일을 하지 않아도 둘 다 잘하는 선생들이 있는데 왜 학생들에게 극복할 난관을 하나 더 주어야 하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똑똑하고 말발이 쎈 학생들을 논리와 지식으로 압도를 해야 하는데 언어가 부족하면 오히려 당하게 되고 권위나 내세워 “딴말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 하는 식으로 도저히 존경할 수 없는 흔해빠진 심리적 폭군의 하나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학원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 영어에 서투른 선생님을 고용한 적도 있는데 오래가지 않았고 이제는 선생님을 선택할 수준이 되어 그런 절충을 하지 않는다) 특히 그룹을 가르치는데는 학생들보다 말을 잘 할 뿐 아니라 말발도 더 세야 한다. 즉, 논리적인 영어로 학생들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참고로 아무리 native speaker라고 해서 그 언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다. 하는 말의 세 번째 단어마다 “like”인 유치한 수준의 구사력을 가진 선생이면 학생들이 그 화법을 배울까 무서워 고용할 수 없다.
긴 이야기가 되었는데 결론은
- 영어가 서투른 선생님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수학을 충분히 잘 가르칠 수있다. 영어가 유창하지만 설명을 제대로 못하는 선생님보다 백 배 낫다.
- 하지만 조리있고 유창한 언어로, 특히 학생들이 배워야 할 지적인 어휘로 (소위 말하는 SAT vocabulary) 논리적인 설명을 구사하는 수학 선생님이 있다면 물론 그 선생님을 선택해야 한다.
학교에서 더 이상 수강 할 수학 과목이 없는 경우
Written on October 2, 2009
By James H. Choi
http://Korean.SabioAcade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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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의 선천적으로 뛰어난 수학 능력과 의욕
- 학부모의 지원 (즉, 애들은 즐겁게 놀아야 한다는 철학보다는 재능을 키워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철학)
- 상위권 학생에게 우호적인 학교 제도
이 세가지 조건이 만나게 되면 학생은 눈부신 속도로 진도가 나간다. 이런 뛰어난 학생만 모아놓은 Thomas Jefferson, Exeter나 Andover 같은 고등학교는 대학교 3학년, 4학년 과정까지 개설되어 있어 학생들이 더 배울 과목이 없을 우려가 전혀 없지만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Calculus BC가 최고이니 일찍부터 재능을 개발한 학생들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배울 수학 과목이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참고로 위에 언급한 고등학교에서 제공하는 대학교 2, 3학년 코스는 AP보다 더 높은 수준이라 AP로 간주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학교 학생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과목을 이수하고도 정작 AP과목 수를 세어 보면 몇개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 상황을 이해 못하는 분들은 “이런 최고의 고등학교 학생들도 AP몇 개 하지 않고도 명문 대학 가더라”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런 결론은 장님 코끼리 더듬는 것과 마찬가지의 관찰이다.)
이렇게 할 과목이 없다는 것은 학교측이 걱정하며 골치가 아플 일이지 학생이 염려할 일이 아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하는 방법은 중학교의 경우에는 근처의 고등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이고 고등학교의 경우는 근처의 대학에 가서 배우는 것이다. 별 유난스러운 짓을 해서 눈총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면 이렇게 유난스러운 학생들만 모여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자신의 학교에서 더 배울 것이 없는 지경이 된 학생들끼리 입학 경쟁을 하는 것이다.
가장 순리적인 과정은 인근의 대학교에 가서 수강하는 것인데 대학교는 돈 받고 하는 일이라 거부를 할 이유가 없지만 고등학교측에서 모든 학생의 수준 평준화를 중요시 하여 특정 학생만 대학교 강의를 수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있다.
1. Special Project.
학교에서 더 가르칠 과목이 없다는 것은 그 수준을 가르칠 교사가 없는 것이다. 그런 때는 학생이 교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습을 하여 크레딧을 받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크레딧을 주는 것은 학교측이고 이 프로젝트를 검사하는 것은 수학 선생님이고 실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학생 자신이거나 또는 외부의 선생님이다. 내 학생들이 학교에서 더 이상 배울 수학이 없는 경우에는 내가 이런 프로젝트를 지도하여 학교측에서 성적과 크레딧을 받도록 하는데 학교측의 동의만 받으면 (학교가 따로 하는 일이 없음으로 동의를 받는 것이 수월하다) 학생의 수준을 지도할 만한 선생님을 찾아 Mentor 역할을 부탁하고 프로젝트를 정해 진행하면 된다.
배우는 내용은 학교 수학과정의 진도를 더 나가도 되고 (Multivariable Calculus) 아니면 수학 경시대회의 수학을 해도 된다. (Number theory, Probability) 하지만 가장 적절한 과목은 학생의 흥미와 관심이 있는 분야다. 이런 special project의 경우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것도 가능하다.
내가 가장 추천하는 Special Project는 과학경시대회에 수학 주제로 출전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순수 수학은 대학생 실력으로도 새로운 연구를 할 주제를 찾는 것이 어려운데 컴퓨터 수학은 새로운 분야라 상상력만 있으면 고등학생이 연구할 수 있는 주제가 아직은 수없이 많이 있다.
2. AP과정,
AP과정은 AP 시험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독학으로 배워도 AP 시험에서 5점만 받으면 대학의 인정을 받는다. 나는 주로 학교측에서 능력있는 학생의 트랙을 올려 주지 않는 경우에 AP를 사용하여 꼼짝없이 실력을 인정하도록 만들었지만 만약 AP과정이 없는 고등학교에 다닌다면 Special Project라고 이름은 걸어놓고 내용은 AP를 공부하여 실력을 과시할 수 있다.
3. 온라인 대학
University of Illinois에서는 대학과정 수학을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대상 리스트를 보면 Post-AP High School Students라고 되어 있으니 바로 배울 수학이 과목이 없는 고등학생에게 적절한 강의이다. AP 이상의 수준이기 때문에 AP시험 처럼 능력을 인정받는 시험이 따로 없어 이 수준의 수학은 정규 크레딧을 주는 곳에서 배워야 하고 이 University of Illinois가 바로 그런 정규 크레딧을 주는 대학과정을 제공하고 있는 곳이다.
여기제 제공되고 있는 수학은 모두 Mathematica를 사용해서 가르치니 Mathematica를 배운 학생들은 이미 도구에 익숙해 있어 한결 편하게 이 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NetMath에서 제공하는 과목은 Differential Equation이상까지 있어 학생이 무한대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Middle name을 꼭 사용하세요
Written on November 27, 2009
By James H. Choi
http://Korean.SabioAcade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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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흔한 First Name은 Mohammed라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가장 흔한 Last Name은 Wang이라고 들었습니다. (Lee라고 하는 설도 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가 세상에 가장 흔해야 할 Mohammed Wang (또는 Mohamed Lee)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려면 dependent event, independent event를 이해하게 됩니다.)
세상에 가장 Last Name의 수가 한정된 국가는 한국이라 생각됩니다. 100 most popular last names 를 가진 사람은 인구의 99%를 넘습니다.
한국은 대신 First Name 들이 다양합니다. 이는 아마도 성으로만 사람을 구별하기 어려운데서 나온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에서 다양한 ring tone이 먼저 개발 된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아마도 100 most popular first names 를 가진 인구는 전체의 1%도 안되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한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 한 반에서 같은 성을 가진 학생들은 많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경우는 흔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평생 “최”씨는 무수히 만났지만 별로 유별날 것이 없는 제 한국이름을 (“형준”)가진 사람을 다섯명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대중매체에서 보는 인물을 합해도 10명 이하로 기억합니다. (박형준이라가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그 반대입니다. 100 most popular last name을 가진 사람은 인구의 1%도 되지 않을 것이지만 100 most popular first name 을 가진 사람을 인구의 상당 수를 차지한다고 생각됩니다. 관광지에 가면 흔한 first name 이 새겨진 기념품을 팔 지경입니다.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문제는 이 두 문화가 만날 때 일어납니다. 몇 되지 않는 last name과 몇 되지 않는 first name을 합하게 되면 Mohammed Wang의 정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즉, 성과 이름이 똑같은 사람이 많아집니다. 이것이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학생의 현실입니다.
물론 인간은 다 존엄하고 이름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것은 잘 아는데 여러명의 서류를 이름으로 구분하는 상황이 되면 문제가 발생됩니다. 예를 들어 이번 AMC 8를 제 학원에서 응시한 학생중에 세명이 같은 성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AMC 8시험 답지에는 주소를 기입하는 난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답지는 그들의 사인을 제외하고는 전혀 구별을 할 수 없습니다. 이들의 학년까지 같으면 AMC 8 이 공식 성적을 보내올 때 이 학생 3명의 점수의 주인을 구분할 방법이 전혀 없게 됩니다. 이는 서류처리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이름 만으로 학생을 구별하도록 만든 제도에 동명3인이 출연한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결국 저는 이 세명이 다른 섹션에서 응시한 것으로 기록을 하여 공식 성적표에서 성적의 주인을 섹션으로 구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제가 답지를 발송하기 전에 이런 구별 방법을 찾지 못했으면 문제는 커졌을 것입니다.
이번 Intel Competition에 서류를 보내면서도 각 페이지 마다 학생의 이름을 적게 되어 있는데 미국이름을 가진 한국계 학생들 사이에서는 동명 2인 3인 4인이 흔했을 것입니다. 대학입학같이 거의 만명의 서류가 섞일 때는 이 혼동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혼동은 (물론 동명2인 우둥생의 기록이 내 파일로 들어오는 것을 꿈꿀 수 있지만) 학생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 경우가 생기리라 우려됩니다.
한가지 간단히 할 수 있는 것이 Middle Name을 반드시 쓰는 것입니다. SAT, ACT, AMC 모두 다 Middle Name (if you have one) 이라고 쓰는 칸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이름을 가진 한국 학생들은 한국 이름을 middle name으로 사용하니 항상 middle initial을 사용하는 버릇을 가지도록 하세요. 이번에 동명3인인 학생도 middle name들을 사용 했다면 제가 이름으로 성적을 구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John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Mohammed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라 가정하고 Kim이라는 성은 Wang이라는 성보다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라 가정을 할 때 어째서 John Kim 이 Mohammed Wang 보다 천배나 (가정수치) 많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지 이유를 자제분들에게 설명해 주시며 모든 공식 서류와 시험에 middle initial을 기입하도록 알려 주세요.
그리고 모든 공식 서류에는 한가지 이름을 같은 스펠링으로 사용하세요. 학생이 한국이름으로 불렸다 영어 이름으로 불렸다 하여 제가 제 학생을 구별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야 만만한 학원 선생이지만 그러지 않아도 분주한 대학 입학 사정관들 정신 사납게 해 봐야 득이 될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계 학생 대입 에세이의 신물나는 주제
Written on December 24, 2009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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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에세이를 지도하다 보면 한국계 학생들의 주제 #1은 아마도 “나는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다”일 것입니다. (통계자료는 없는 제 개인적인 짐작입니다.)
이 주제는 학생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issue 인 것이 틀림없는데 이 학생이 모르고 있는 것은 이 갈등이 얼마나 흔해빠진 주제인가입니다. 저같이 가끔 에세이 수정을 옆에서 흘려 듣는 사람도 “맙소사 이 학생도 또 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라고 질릴 지경인데 대입 사정관들은 이 주제로 별 차이 없는 내용을 수만번 읽었으니 얼마나 신물이 나겠습니까?
이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닙니다. 군대이야기 반복하는 사람처럼 그 경험이 인생에 그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기억과 사고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군대 이야기 처럼 주위 사람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이 학생이 등장하기 전에 수만명이 벌써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했고, 관객은 이미 지겨워서 비비틀고 있는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섰을 경우에는 주제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이 “나는 x 도 y 도 아니라”라는 주제는 인종 국적 외에도 인생 전반에 흔한 주제입니다. 즉, 이 학생들만이 겪는 특이한 경험이 아니고 이런 경험을 자신만의 독특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 조차 흔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외국에서 거주해야 이 “나는 x도 y도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난 동네에서 지속해서 자라난 사람도 그런 갈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물리학자 사이에서도 “나는 이론 물리도 실험 물리도 아닌 그 사이의 물리를 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그 고립감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친구도 보았습니다.
이런 “나는 x도 y도 아니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자신의 실패의 책임을 몽땅 이 “나는 x도 y도 아니다”로 돌릴 준비가 되어있는 학생은 대체 얼마나 편파적인 우대를 기대해서 그렇게도 소외감을 느끼는지 모르지만 이 학생보다 더 긴 시간 같은 땅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학생도 “나는 것도는 외부인이야…”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고 또 지난주에 이민온 학생이 “여기는 참 좋은 곳이다”라고 생각하며 신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어떤 학생은 “부모가 나 어렸을 때 내 의견을 묻지 않고 이민을 왔다”라고 이민 자체가 인권침해였던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도 피해의식이고 책임전가입니다. 마치 이민을 오지 않았으면 자신이 성공적인 인생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과 자신의 인생의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려는 비겁한 자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다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부모가 의견을 묻지 않고 자식을 이 세상에 출생을 시킨 결과물(결과인) 입니다. 사람이 그런 과감한 결단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미 멸종 했습니다.
부모라는 존재는 이렇게 자녀 본인의 의견을 묵살한 채 (물어볼 도리도 없고) 기분 내키는대로 생명을 주고 말고를 정하는 사람들인데 이민 결정 쯤이야, 특히 모든 면에 더 나은 세계라는 곳으로 이민을 가는 것 쯤이야 자녀의 의견을 고려치 않고 결정하는 것이 충분히 있고도 남을 일입니다. 그리고 어린 자녀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해서 더 나은 부모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초등학교부터 자녀의 의견을 극진히 존중하던 부모가 나중에 별로 성공적으로 자라지 못한 (애들 수준으로 진로를 택한 인생이니 잘 되면 운이죠) 자녀로부터 듣는 말은 감사의 인사가 아니라 “왜 그 때 억지로라도 시켜주지 않으셨어요?”라는 원망 그리고 책임전가 밖에 없습니다.
“나는 x도 y도 아니다” 의 학생에게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근거없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항상 실실 웃고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의식에 잠겨살지 말고 현실을 더 직시 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그런 기분의 하소연 해 봐야 일이 해결되지도 않고 아무도 긍정적으로 봐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은 환경보다도 자신의 의지에 더 달려 있는 것이고 대학 지원 에세이에 나는 이런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이라고 광고하지 말고 에세이는 보다 독특하고 보다 건설적인 경험을 보다 미래지향형으로 다루라는 것입니다.
이번주 Economist 지에 바로 “외국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기사는 foreigner란 무엇이며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꼭 “나는 x도 y도 아니다” 라는 주제로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고집하는 학생은 이 기사를 읽고 나면 더 조리있게 신물 좀 덜나게 “나는 x도 y도 아니다” 라는 에세이를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나는 x이며 동시에 y이다” 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학생도 이 글을 읽으면 자신이 지불하고 있는 댓가를 알 수 있습니다. 프린트 하셔서 학생들에게 (다시한번 자제분의 의견을 무시하고) 꼭 읽히세요. 자제분들에게 보여주지 않으시면 나중에 “왜 그 기사를 제게 억지로라도 읽히지 않으셨어요?”라고 원망을 들으실지 모릅니다.
수학과 어린이 정신 성숙도
Written on May 25, 2005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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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TV에서 자연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집안에서 마른 옷을 입고 창밖을 내다볼 때만 비의 낭만을 느낄 수 있듯이 사자의 발톱이 안전하게 브라운관 안에 갇혀 있을 때 나는 야생의 멋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런 프로그램을 열심히 본 덕분에 나는 숲, 바다, 산 등 황량한 야생을 보노라면 그 안에서 살아 남으려고 도망 다니는 동물들과 민첩하지 못해 산채로 잡아 먹히는 동물을 상상하게 됐다. 목숨을 살리기 위해 문자 그대로 필사적으로 달리는 모든 동물중에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갓난 애기 동물들이다.
인간 영아들은 자라난 후에야 (아마도 유아 열등 콤플렉스에 의해) “나는 달리려고 태어났다(I was born to run)”고 열창을 해 대지만 야생동물들은 아무 말 없이 생존을 위해 평생 달린다. 많은 야생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젖을 빨기도 전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달리는 것이다. 이것은 한번 생각해 볼만 하다. 채 무엇을 배울 시간이 있기도 전에 갓 태어난 사슴은 뉴턴의 역학의 법칙(중력, 가속, 속도, 거리), 입체시야 해석방법, 가족 식별, 육식동물 식별 그리고 생존하기 위해 달리는 방법을 안다. 이와 같이 먹이사슬의 사전배정 즉, 먹이사슬 도표 지도에서 “you are here!”라는 명확한 위치의 주제파악을 하고 태어나는 것은 무력한 인간의 유아에 비하면 놀랄 만한 지식이다.
사실 그 어느 동물보다 인간의 유아가 가장 준비 안 된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준비가 안 된 정도가 아니라 미완성된 상태로 태어난다. 완전히 제 기능을 다하는 두뇌는 너무 커서 출생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인간은 태어난 후에 밖에서 발달과정을 완성한다. 스위스 태생 심리학자 (마리아 몬테소리의 제자) 장 피아제(1896-1980)는 인간발달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데 관한 영향력 있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피아제는 아동발달 과정을 관찰하여 다음과 같이 4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를 소단계로 구분하였다.
1. 감각운동 단계 (0-2세)
2. 전 조작 단계 (2-7세)
3. 구체적 조작 단계 (7-11세)
4. 형식적 조작 단계 (11-15세)
전 조작 단계의 아동 (2-7세 아동의 대표적인 현상)은 물을 다른 용기에 부으면 수량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컵에 들어 있는 물을 (흘리지 않고) 접시에 부으면 물의 양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접시에 있는 물을 컵에 다시 부으면 물의 부피가 원 상태로 돌아왔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즉, “부피보존”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이 단계의 아동은 “질량보존”의 개념도 이해하지 못한다. 찰흙 두 덩어리를 놓고 한 덩어리를 늘리면 이 단계의 아동은 크게 늘린 덩어리에 찰흙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무겁다고 생각한다.
전 조작 단계의 아동에게 부피가 보존된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 가르쳐야 한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물론 실험을 반복하여 부피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크기가 다른 용기에 물을 담으면 더 많아 보이기도 하고 적게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물의 부피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자녀를 두신 부모님께 한번 이 실험을 해보시라고 권고한다. 똑 같은 컵을 두개 사용하여 A에는 물을 더 많이 넣고 B에는 적게 넣는다. 아이에게 물어보면 물론 A에 물이 더 많다고 한다. 다음에는 A의 물을 넙적한 대접 C에다 따른다. 이때 물어보면 전 조작 단계의 아이는 B가 더 양이 많다고 대답한다. C에 있는 물을 다시 A로 따르면 A의 물이 더 많다고 한다.
지금 내 설명을 듣고 실험을 했더라도 그 결과를 보면 좀 충격적이다. “이렇게 당연한 것을 모르다니???”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이런 간단한 사실도 관찰하지 못하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르쳐야 하는가? 유치원을 바꾸어야 하는가? 여름방학 영아 부피보존 개념 주입 특별교실에 등록을 해야 하는가?
C의 물이 B보다 많다고 말하도록 가르칠 수가 있다. 이 실험을 반복하면서 대답이 맞으면 잘 했다고 칭찬하고 틀리면 인상쓰고를 반복하면 마침내 C의 물이 더 맚다고 대답을 한다. 정의의 승리이고 과학의 승리이자 교육의 놀라운 효과라고 감격할만하다. 참 신통하고 역시 내 아들이라고 자랑할만하다. 그 나이또래의 아이들은 깨닫지 못하는 어려운 개념인데 일찍 통달했고 이런 식으로 나가면 10살때면 대학도 졸업하지 않을까도 싶다.
한데 이 교육방법을 사용하면 물의 부피보존 정도가 아니라 더 놀라운 교육효과도 낼 수 있다. 예를 들면 “1 + 1 = 3″이라고 말하도록 가르칠 수도 있고 해는 서쪽에서 뜬다고 가르칠 수도 있다. 즉 무슨 말이든 따라하는 앵무새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배우는 것은 지식이 아닌 것이 이 새로 배운 지식으로 다른 아무것도 터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일단 구체적 조작 단계(7-11세)에 들어가면 어떠한 가르침도 없이 갑자기 “부피보존”의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전에는 이해를 못하던 부피보존도 이제는 오히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왜 그런 바보스러운 질문을 해 오는 자체를 의아해 한다. 신기한 것이 이 단계가 가르친다고 빨리 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교육받지 못한 무지한아동이라도 이 나이가 되면 저절로 부피 보존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성숙한 것은 아니다. 구체적 조작 단계의 아동의 이해도는 컵을 물 분량을 구분할 수 있어도 아직 보고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물체를 이해하는데 제한되어 있다. 수학적 개념으로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누기 등을 이해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이 나이의 아동은 허수나 분수지수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이 나이의 많은 아동들은 x를 변수로 사용하는 개념을 난해하게 생각할 것이다.
아동들은 형식적 조작 단계(11-15세)에서야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생긴다. 이 단계에서는 힘의 장 (force field) 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물체, 무한대와 같이 경험할 수 없는 양, 공정성이라는 무형의 개념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단계에서 학생이 추상능력과 논리연산능력을 갖추어야 무한급수, 확률, 미적분 등을 학습할 수 있게 된다. 이 형식적 조직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 수학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구체적 조작 단계에서 형식적 조작 단계로 발전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5, 6학년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학생 중 아무리 노력해도 Algebra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그 이유는 약한 산수기반과 무관심등을 포함하여 그 밖에도 많겠지만 종종 그 원인은 발달단계에 있다. 5, 6학년 학생들은 구체적 조작 단계에서 형식적 조작 단계로 들어가는 과도기적인 시기이다. 이 과도기에는 방정식을 도저히 이해 못하던 학생이 몇 개월 만에 갑자기 영리한 학생이 될 수도 있다.
고전하던 학생이 갑자기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나는 안도감을 느낄 뿐 아니라 가슴 뿌듯하게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몇 달 전에 눈물 겨운 노력을 했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저절로 이해를 할 것이었으면 들들 볶지 말고 그 학생이 자연스럽게 형식적 조작 단계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았을까? 어차피 오후에 다 녹을 눈이라면 아침 내내 허리를 삐어가며 치워야 하는가?
학생들의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않고 4학년과 같은 어린 학생들에게 덮어놓고 Algebra을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다. Algebra을 학습하고, 방정식을 풀고 정답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린 학생들이 진정으로 수학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문제 푸는 방법을 보고 흉내내면서 “물의 부피는 변하지 않는다”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식으로 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응용문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앵무새적인 요소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수업과 학생의 발전의 인과관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해서 학생들이 다음 단계로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자연적으로 터득할 것을 내가 빨리 터득하게 한다고 피곤하게만 만든 것인가? 만약 “부피보존”의 개념이 교육 없이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수학적 추상능력도 Algebra도 Geometry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교육이 단계진행을 촉진하는가? 아니면 학생이 그 단계에 이를 때까지 교육이 기다려야 하는가?
일단 묻기 시작한 질문은 한없이 깊이 들어가기만 한다. 교육이란 대체 무엇인가? 어린이들이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게 밀어주는 방법인가? 아니면 현재 발달단계에서 그들이 제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인가? 너무 이른 나이에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벼가 빨리 영글으라고 모를 뽑아놓는 짓인가? 아니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도록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인가?
나는 이 질문들의 정답을 모른다. 단지 몇몇 학생들은 특정 나이에 일찍이 Algebra을 배워 종종 벽에 부딪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무슨 요술처럼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알뿐이다. 내가 고등학생만 가르치고 어린 학생 가르치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 이 과도기의 문제를 피하고 싶은 잠재의식인지도 모르겠다.
이 발전 단계적 과도기의 학생들의 성적이 갑자기 향상되면 물론 나는 전적으로 그것이 나의 공적으로 돌리고 싶지만 사실 그의 갑작스러운 계발이 나의 가르침의 영향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 자신에게 확실히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내가 학생의 지적성장을 더디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사진과 함께 “학생의 발전을 더디게 하지 않게 한 은사”라는 제목의 일면 뉴스 톱기사를 상상해본다.
이런 우여곡절과 허무한 성공이 5, 6학년 학생들에게 Algebra을 가르치는 좌절과 보람이다. 만약 독자 여러분 중 4, 5학년 정도된 자녀가 산수를 잘 해오다가 Algebra에서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발전 단계의 과도기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기다려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산수기초만 탄탄하다면 때가 되면 형식적 조작 단계로 이르게 되어 갑자기 개념을 모두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짧으면 2,3개월 걸릴 수도 있으며 그 기다리는 기간 동안에는 산수, 주산 배우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