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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시수학에 강한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진학생의 수학이 강해지나?

경시수학에 강한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진학생의 수학이 강해지나?

By James H. Choi
http://Korean.SabioAcademy.com
원문출처

HMMT에서 전 해의 성적이 우수하면 다음 해에 자동으로 초청을 받습니다.

여기에 자동 초청 팀의 리스트가 있습니다.
http://web.mit.edu/hmmt/www/accepted.shtml

이 리스트로 미국 고등학교를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이들은 HMMT에 출전했던 학교 뿐이고 Albany Math Circle 또는 Lehigh Valley 같이 학교와 무관하게 지역 학생들이 모여 출전하는 팀도 있습니다.

한데 이 리스트에 등장하는 학교로 진학하면 진학생의 수학 수준이 올라갈까요?

“Football 팀이 강한 대학에 진학하면 학생의 체력도 향상되나?”와 같은 질문입니다.

학 교 대표 운동 선수도, 학교 대표 수학 선수도 다 뽑힙니다.  일단 뽑고 나서 선택된 학생만 훈련을 시키는 것이니까 뽑히지 못했으면 Football Champion 학교에 진학한 혜택이 없습니다.  단 승리하는 팀을 응원하는 기쁨을 누릴 수는 있겠습니다.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수학에 강한 학교의 혜택을 받으려면 이런 학교로 진학해서 후광의 혜택을 보려는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학교 대표 재목으로 뽑히도록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https://i0.wp.com/dl.dropbox.com/u/6378458/Column/Info/Korean/SpecialEvents/SpecialEvents.gif위 의 HMMT 자동 초청 리스트에 나온 한 팀은 틀림없이 유명한 미국의 top 10 boarding school 중에 하나이지만 2010년 HMMT에 출전한 8명이 모두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었습니다.  저희 학원 원장님이 team round에 그 팀 감독 하셨는데 팀 전체가 서로 한국말로 이야기 하며 문제를 풀더랍니다.  즉, 그 수학 팀의 실력은 길러진 것이 아니라 뽑아온 것이었습니다.  그 학교가 위의 선택받은 학교 리스트에 등장한 것을 보니 그 고등학교 입학 사정관은 한방에 학교의 수학 수준을 올려놓은 것에 대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내용을 모르는 채 이런 리스트만 보고 그 학교의 수학 수준을 짐작하여 진학 선택을 하게 되면 헛짚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공개적으로 나온 ranking 같은 것은 참고만 하시고 실지 속 내용은 직접 알아 보셔야 합니다.  물론 이는 network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network 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항상 알짜 혜택을 보게 되고 학교 brochure나 web site 만 보고 그대로 믿는 사람은 계륵만 차지 합니다.

최 고의 학교 내부 정보 제공자는 그 학교 출신 학생의 학부모님입니다.  재학 중에는 아직 모르는 점이 많고 아직 헛짚는 중이니 졸업생의 학부모님에게 정보를 얻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겉으로 보면 휘황찬란한 동부의 명문 boarding school 을 전액 장학금으로 다니어도 아무데도 공개되지 않는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그런 내용은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도 않으니 경험자로부터 직접 들어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을 알고 그런 상황을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진학해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지금부터 network을 구축하세요.  나와 똑같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아끼시고 나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친해지도록 하세요.  한국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의 교육 상황도 급변하고 있으니 지난 3년 내에 졸업한 학부모님의 정보가 가장 정확합니다.  더 오래된 정보는 이미 요순시절의 일화가 되어 각박한 현대 생활에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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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

By James H. Choi
http://Korean.SabioAcade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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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미국 대학을 목표로 준비하는 학생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

이민온 한국인이 20년을 살아도 고전하는 영어를 한국 학생들은 미국 땅에 발을 밟지도 않고서도 터득한다.  미국 역사는 물론 심지어는 영어 작문에서도 미국의 학생들보다 고득점을 하고 미국인을 제끼고 미국의 대학에 합격한다.  이는 황소와 씨름에서 이기는 것이고 치타와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이다.  참 대단하다.

내가 보기에는 한국에서 공부한 학생이 미국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이곳의 2세가 합격하는 것 보다 10배가 더 힘들다.  노력이 10배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같은 조건을 가진 100명이 지원하면 2세는 10명이 합격하고 한국에서 온 학생은 1명이 합격한다.  한국인 뿐 아니라 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는 외국 국적의 학생은 아주 뛰어난 재능과 기록을 가지고 있어도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저 학생이 안된다면 대체 누가 합격한다는 말인가???”하고 턱이 다물어지지 않는 불합격 소식 다 외국인으로 지원한 학생이었다.  동양인 quota는 없다고 누누히 강조하지만 외국인 quota는 공식적으로 선포되니까.  내가 가르치는 학생도 영주권/시민권이 없으면 준비하는 강도가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대학의 관문만 높은 것이 아니다.  많은 경시대회, 무료 여름 캠프도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있는 학생으로 자격을 국한시킨다.  대학의 학비 지원금도 외국에서 오는 학생에게는 국물도 없지만 영주권/시민권자는 돈이 없어 최고 대학에 못 다니는 경우가 없다.  아니 오히려 돈이 없으면 최고 대학으로 가는 것이 더 저렴하게 공부할 수 있는 꿈같은 기회가 열려 있다.  한국에서 준비하는 학생이 보면 미국 영주권/시민권을 가진 학생은 영어를 처음부터 native speaker로 구사하며 돈 걱정 없이 아무런 거침없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낙원에 살고 있다.

한데 골고루 유리한 조건을 누리는 교포 2세 학생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에서 오는 학생들에 비하면 “조금만 노력하면” 명문대출신의 후광효과를 저렴하게 그리고 비교적 쉽게 영위할 수 있는데 정작 이런 유리한 조건을 갖춘 학생들은 그렇게 열심이 아니다.  게임에 열중이거나 “인생은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정색하고 강조한다.  “나는 네가 행복하기 바란다”라는 부모의 말을 정말 그대로 믿어 부모에게 “나는 지금이 행복하니 힘든일 시키지 말라”고 진지하게 말한다.  토끼가 낮잠을 자야 거북이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인가?  이렇게 해서 세상이 공평해지는 것인가?
https://i0.wp.com/c.sabio.tv/Column/Info/Korean/SpecialEvents/SpecialEvents.gif물론 그 학생의 학부모가 이민/유학와서 성공한 것이 바로 미국인이 “행복을 추구”하며 “여유있는 삶”을 놓치지 않기위해 외국에서 온 사람과의 정면대결에서 양보한 때문인데 이제는 그 밀려나는/양보하는 미국인이 바로 우리의 자녀들이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인으로 자라나더니 외국인에게 양보하는 미덕까지 보이는 것이다.  요순시절에는 이민자/유학생에게 양보하고도 다른 할 일이 있었지만 각박해지는 국제경제 속에서 양보 다 하고 나면 무슨 일이 남을까?  나도 모르겠다.

물론 한곳의 생활에 잠겨 있으면 모든 어려움이 확대되어 보여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난관으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난관을 뚝딱 극복해버리는 학생이 수두룩 하다는 것을 직접 보면 자신의 엄살이 한심해지고 문제를 피해가는 모습이 초라해질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더 큰 세상을 미국이라는 우물안에서 자신이 대단히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늦기전에 보여주는 것인가?” 이라고 생각 되는데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무”라는 개념은 전혀 없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는 소리만 듣고 자라 정말 “좋아하는 것”만 골라하며 잘하면 칭송성 칭찬, 못하면 격려성 칭찬을 듣기 바라는 학생들.  담 밖의 무서운 적수를 보더라도 “나는 그런 경쟁 안좋아해”하면 그만 아닌가?  부모님이 항상 “좋은 것” 하라고 했으니.   그러면 “무조건의 사랑”을 평생 약속해 온 부모님은 조건 없이 지속해서 학생이 “좋아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무조건” 사랑과 “무조건” 지원을 하고, 그것이 그려오던 삶이 단상이 아니었던가?

나는 “세상의 누구나 다 내 학생이 될 수 있다”는 지극히 개방/공평하면서도 “누구였건 내가 가르친 학생이 이겨야 한다”는 지극히 편협/이기적인 생각을 동시에 갈등없이 굳게 믿으며 살기 때문에 내게는 어느쪽이 우세하건 관계없다.  히딩크가 어느 나라 축구팀이건 자신이 코치한 팀이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다.  나도 학생이 무슨 색이었건 어디 출신이건 내 학생이 성공하면 그것이 나의 성공이다.

한 데 양쪽을 동시에 보고, 가르치고 있는 내게는 미국쪽이 답답하다.  아무리 등잔및이 어두워도 분수가 있지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의 사람에게 유리하게 만든 이땅의 황금같은 기회를 가볍게 보고, 아니면 부담스럽게 보고 외국에서 오는 학생에게 저항없이 넘겨준다는 것은 비극쪽에 가깝다.

현재 미국의 대학이 외국인 학생의 비율을 낮게 책정하고 미국의 학생에게 우선권을 주니까 그나마 견디고 있지만 언젠가 미국 대학이 “신입생을 국적에 관계 없이 실력으로만 선발 한다”고 하면 몇명이나 살아 남을까?  대학원에서는 이미 실시되고 있는 제도이고 물론 이공계의 대학원은 외국인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독자분들이 바로 이 대학원을 장악한 유학생 출신거나 배우자이시다.

그리고 인종적으로도 “국적에 관계 없이 동양인을 전체 신입생의 20%로 잠정 결정”하여 실력으로만 뽑는다면 미국의 교포 2세는 몇 명이나 뽑힐까?

그리고 이미 일어나기 시작한 현상으로 대학이 운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외국인이어도 학비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학생 순으로 받는다”고 하면 미국의 한국인 2세들은 몇 명이나 경쟁에서 살아 남을까?

북 극의 빙산이 녹아 북극 곰이 살아갈 수 있는 자리가 줄어가고 있다고 들었다.  미국에서 부모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 “좋아하는 것”을 찾고 있는 학생들이 앞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지도 줄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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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서도 자유와 평등은 공존 불가

교육에서도 자유와 평등은 공존 불가

By James H.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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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이라는 말은 항상 같이 나온다.  하도 같이 듣다 보니 이 두가지 개념이 실과 바늘처럼 항상 같이 따라 다니는 환상까지 가지게 되는데 이 두 단어는 “전쟁과 평화”처럼 상반되는 아이디어이다.

주: 엄격히 말하면 미국에서 말하는 “자유와 평등”은 법 앞에서 평등한 것으로 평등을 국한한다.  수입이나 생활방식이 평등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교육에서도 평등이란 같은 시험을 보는 평등이지 같은 점수가 나온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같은 점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이 글은 같은 점수를 내려고 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글이다.

자유가 있는 곳에는 평등이 없고 평등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없다.  동서고금 이 두가지가 공존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과 평화처럼 전쟁 = bad, 평화 = good 같은 여론도 조성 못한 채 아직도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실현 시키려 무지개를 찾느라 헛수고를 하고 있다.

어느 나라나 교육정책이라는 것은 이 자유와 평등의 줄다리기로 볼 수 있다.  평준화는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런 교육제도에서는 자유가 말살된다.  미국같이 학생의 능력에 따라 트랙을 만드는 곳은 학생들의 능력을 천지차이로 벌려 놓는다.

누가 옳은가?  우리는 평등해야 하는가 자유로워야 하는가?

이것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공산주의가 나오고 다른쪽으로 너무 기울면 Nazi 가 나온다.  (Nazi는 자유경쟁에는 패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 없다는 social Darwinism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해석한 데서 온 사상이다)  나는 이런 거창한 주제를 들먹일 자격이 없으니 정치 경제는 프로들에게 맡기고 나는 교육의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겠다.

미국의 현재 문화는 diversity의 중요성을 종교처럼 가르쳐 모든 면에 diverse 한 생각을 하고 결과를 내라고 가르치고 있다.  대 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diversity training 까지 받는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이해를 가지게 하는 training 으로 간단히 말해 인종차별, 동성연애자 차별, 영어 잘 못하는 사람, 여성을 차별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코스이고 대기업에서는 모든 직원이 의무적으로 받도록 되어있다.
https://i0.wp.com/c.sabio.tv/Column/Info/Korean/SpecialEvents/SpecialEvents.gif이렇게 diverse 하면 할 수록 좋은 것이라 강조 하면서 월급과 성적만은 diverse 한 것이 무슨 사회악인양 취급을 한다. 고소득 층과 저소득 층의 사이가 더 커졌다고 난리인데 income 이 diverse 해진 것이 아닌가?  Income 이 diverse 해지면 lifestyle 도 자연히 diverse 해질 것이고 그러면 diversity에 좋은 것이 아닌가?

성적도 diverse 한 것을 비평하고 있다.  성적이 diverse하면 각자 택하는 커리어도 diverse 해지고 따라서 사는 스타일도 diverse 해지니 저절로 사회가 diverse 해지니 바라던 일이 아닌가?  한데 이 학교 성적만은 diversity 를 문젯거리로 삼는다.  모순이다.  자유와 평등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이 모자라는 행동이다.  자유를 보장하고 평등한 결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를 이해 못한다는 결론 밖에 안 나온다.

여름 방학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여름 방학은 놀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적으로 모든 고등학생이 여름 방학에 놀아야 한다고 제정하는 것은 북한 같은 나라에서나 할 일이고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다 알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자유를 준다.  따라서 여름방학 때 신나게 노는 학생이 있고 여름방학 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  다 자유를 만끽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diverse 하게 여름 방학을 보낸 것이다.

한데 가을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측은 이 diverse 한 학생들이 같은 성적을 내기를 바란다.  여름방학 때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자유를 주어 놓고서는 개학 시에는 실력의 평등을 요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정말 개학 후 평등한 실력을 원한다면 법으로 다 놀게 하던지 다 공부하게 하던지 했어야지 마음대로 하는 자유를 주면 안되었던 것이다.

이 공부하는 학생과 노는 학생이 인종별로 쏠려 있으면 문제는 더 커진다.  문화의 차이로 한 인종은 여름방학 동안 열심히 공부해 성적이 올라가고 다른 인종은 놀고 보냈다면 공부한 인종의 성적이 올라가고 놀은 인종의 성적이 제자리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과 응보요 서구문명의 격언으로도 you reap what you sow 이다.  하지만 이 차이를 diverse 한 여름방학 활동이 가져온 diverse 한 결과로 보지 않고 사회의 부조리로 매도하여 공부 안 한 학생에게 특혜를 주기 시작하여 똑 같은 결과를 내도록 조종한다면 이는 모순을 지나 위선이다.

이것이 오늘 미국의 대입제도의 현주소이다.  자유로운 교육을 보장하면서도 결과는 평등을 기대하다 못해 아예 인위적으로 조장하려 한다.  대입 제도에서만은 자유와 평등의 공존 환상을 떨치지 못하고 뛰어난 학생들을 밀어 내리고 처진 학생들 끌어올려가며 평등을 창조하고 있다.

https://i0.wp.com/c.sabio.tv/Column/Info/Korean/Copyright.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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